Wednesday, July 01, 2009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이 곧 방한한단다... 기념으로 예전에 썼던 단편집 감상 (원문은 happysf.net 게시판. 게시물로 바로 가기. 역자 김상훈님이 직접 덧말 남겨 주셨음. )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여러가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난 SF 에 대해선 언제나 초보인 기분이다. 출판되는 책들마다 대부분 관심을 기울이고 읽은지 제법 되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어째 그 관심이란게 지속적이지 못하고 독서를 전후한 시간에만  일어났다 금새 사그라드는 단발성이었던것 같다. 매번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테드 창의 단편집에 관해서 느낀 아쉬운 점은 두가지인데,  하나는 알라딘 선착순 이벤트에 떨어진 것이고 또 하나는 워낙 큰 기대를 해서인지 그만큼 미진한 구석을 남긴채 독서를 마쳤다는 것이다.  테드 창에 대한 기대가 무크지 Happy SF에 실린 기사와 단편을 읽고 그만 바벨탑처럼 하늘끝까지 치솟아 올랐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드높은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소설은 거의 없다.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이야기들은 워낙 수준이 탁월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어쩌다 마주치거나  별생각없이 집어들고 읽어보았을때 기대를 훨씬 웃도는 강도높은 예술적인 체험을 전해준 연유로 오히여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많았다. 만족감은 기대의 제곱에 반비례하나 보다. 그러한 탓에 난 그만 테드 창의 단편집을 보며 그안에 잠재되어 있었을 감동을 전해 받을 기회를 잃고 말았다. 행복한 책읽기 게시판을 훑어 보니 땅콩샌드님은 재미와 감동을 받으셨다지만  난 다른 걸작들에 비한다 해도 그다지 크게 느끼지 못했다. ihong 님은 울기까지 하셨다는데 잘 이해가 안간다. 아마도 취향의 차이, 혹은 장르에 대한 노출(?) 의 정도차이일 수도 있겠다. 하드 SF에 그다지 마음이 끌리지 않는 나는, 롱이어의 '적과 나'와 같은 중편들이 실려있기를 바라고 있었던것 같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공감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래도 몇가지 독후감을 더 적어 보고 싶다.

무크지 Happy SF 에 실린 김상훈님의 글에서 'Her World Exploded'라는 문장을 놓고 예를 든 인용부분을 재미있게 보았다. 나는 그 부분을, SF 를 읽을때는 SF를 대하는 마음의 준비가 - 기계라면 다이얼을 똑똑 돌려서 SF 모드로 맞추어 놓는 예비작업이  - 필요하다는 뜻으로도 읽었다. 내게 부족한 것은 아마 그런 정신적 준비체조인가. SF를 SF로 만드는 어떤 요소들을 나는 소설에서 부차적이고 더 나아가서 불필요한 것으로 자꾸 간주한다. 예를 들면 '일흔 두 글자'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서술되는 명명학과 열역학, 생물학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부자연스러웠다.  과학적인 논리를 소설에 얹기 위한, 그냥 소설일 수도 있는 작품을 SF이게 하는 변별력을 부여하는 부분이겠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의 완성도를 떨어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의미를 가지는게 아닐까. 내게는 소설의 부드러운 전개를 막는 불필요한 요소로 보였다. 그렇게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데.

좋은 예일지 모르겠지만, 도솔에서 나온 휴먼 SF 걸작선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 가운데 하나인 파이어스 앤소니의 '은하치과대학' 이 실려 있다. 나는 이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몇번이고 다시 읽었다. 후에  이 단편이 실은 어느 장편 소설의 일부이며, 도중에 나오는, 주인공이 외계 고래 입속으로 들어가 이를 때운 이야기나 공룡을 닮은 떠돌이와 동업한 등의 이야기가 소설속의 허구가 아니라 다른 챕터에 실제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책도 구해서 보았다. 변방 지구출신 치과의사의 은하계 모험이라는 기발한 소재와 해학넘치는 에피소드들, 그리고 천연덕스럽고 진지하기  짝이 없는 시술의 묘사, 가슴에 와닿는 인간적인 장면들이 하나같이 재미있었다. 난 치과 진료에 대한 상식 수준의 지식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그 소설을 즐겁게 읽는데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온갖 외계인의 이를 치료하는 데 필요한 상세한 의료적 사실을 굳이 열거하지 않은것이 소설을 훨씬 자연스럽고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고 느꼈다. 아니 실제로는 할 말을 다 했지만 그것이 교묘히 잘 감추어져  있었을 수도 있겠다.

마찬가지로 '당신 인생의 이야기'도, 헵타포드어, 변분법에 관한 서술을 대폭 줄여 게리와 루이즈의 (외계)언어에 대한 대화 정도만 남겨 놓고 딸의 이야기를 더 집어 넣었다면 훨씬 소설적인 완성도가 높고 감동도 더 크지 않았을까 한다. 전에 앳우드의 '눈먼 암살자'를 보면서도 여기서 한 챕터 건너 계속 끼어드는, 주인공이 썼다는 SF만 빼면 양도 반으로 줄고 긴박감도 더 하고 훨씬 더 낫겠는데 하는 생각을 줄곧 했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꼽으라면 '바빌론의 탑'과 이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에서 후자를 고르겠다. 자신의 딸에 대한 루이즈의 애틋한 회상은 어딘가 노먼 클라인의 '선샤인' 여주인공을 연상시키는 가슴 뭉클함이 있었다(이 소설을 읽고 눈시울이 뜨거워져 당황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이야기에 내 마음은 언제나 흔들린다. ihong님이 느끼셨던 심정도 이와 비슷한건가).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는 다른 수록 소설과 분위기가 좀 다르지만 오히려 재미있게 보았다. 고종석씨가 쓴 단편 '전여총 회장님께 드리는 서한' 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창은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저자의 찬반 의견을 정확히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고종석은 화자를 통해 자신이 받을 비난의 목소리를 의식하면서 훌륭한 외모가 지적인 능력에 비해 격/비하될 자질이 결코 아니라는 견해를 매우 조심스럽게 밝혔었다. 동일한 소재를 칼리그노시아를 등장시켜서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간 것과, 기업의 부당한 채용 기준에 반발하는 한 (가상의) 여성 단체 회장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으로 이끌어 간 것이 한 소설을 SF에 또 다른 하나를 메인스트림에 놓이게 하는 기준이 되었을 것이다. 둘다 정통적인 소설의 서술이 아니라는 면에서, 수없이 접하게 되면서도 막상 소설에서 많이 다루어지지는 않았던 소재를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테드창이 받은 굵직굵직한 상의 권위를 인정하고서 볼때, 이 단편들은 아마 곧 고전의 대열에 오를 것이다. 어떤 예술이든 어떤 장르든간에 명작이라 꼽히는 것은 다 한번씩 감상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설사 감상후의 만족감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나중에 세월이 지나고 그 작품/장르에 대한 이해, 포용력이 깊어졌을때 새삼스럽게 걸작과의 교감을 느끼게 된 경험이 몇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는 오랫동안 , 정신 나간 놈들이나 하거나 듣는다고 단정짓던 북유럽 블랙메틀에, 한 사악한(?) 친구 덕에 서서히 노출되다가, 드디어 어느 감상회에서 엘렌트(Elend)의 '루시퍼의 혁명(Luciferian Revolution)'이라는 곡을 접하고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과 감동에 휩싸이고서 그동안의 음악적 편견에 대해 반성한 일이 있었다. 테드 창의 단편 역시 지금의 감상이 끝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다. 장르에 접근하는 몇가지 장애물이 사라진 후에 색다른 감흥을 띠고 다가올 순간을 기대한다. 사보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안사면 후회했을 것이다. 나온줄 모르고 지내고 있을 어린 미래의 SF 팬들, 나중에 이 책을 구하려고 애쓸 것을 상상하니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책장에 잘 모셔놓고 다음 책들을 보아야겠다.


덧말... 테드 창의 중국 이름이 한국식으로 읽으면 '강봉남'이었다....


(2004.11.26)

Wednesday, June 10, 2009

WBVA 어워드

잡지 링(Ring)도 못 사보고 ESPN Friday Night Fights 프로도 못보고 그렇게 몇년이 지났어도, 퓨질리즘에 대한 갈증으로 사망하지 않은 것은 다 WBVA 덕분이다.  좀 늦긴 했지만 WBVA 회원들이 투표해서 매년 뽑는 어워드 2008년 편을 옮겨 보았다.  원문은 The WBVA 2008 Award Winners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아마 회원가입을 해야 할것이다).

원문에 잔뜩 들어있던 경기 스냅샷들은 너무 원색적이라 뺐다.

우선 포스팅이 너무 늦어져서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해야겠다. 여러가지 일로 바빠서였지만 어쨌든 면목이 없다. 이하 해설, 견해(이건 얼마 없다...), 철자 오류 그리고 빼먹은 점 등등은 모두 필자의 창작이며 책임이라는 점 역시 말해두고 싶다. 근거없는 내용이 보인다면 알려주기 바란다. 투표 참여 열기는 대단히 뜨거웠다. 참가해준 이백명 남짓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투표 최종 결과는 여기 누르면 나온다
http://www.misterpoll.com/polls/375772/results

그리고 여기로 가면 수상 경기들을 모두 볼수 있는 토렌트 트랙커가 나온다. http://fights.worldboxingvideoarchive.com/details.php?id=33587&edited=1  모두 공짜이므로 다운로드하고 씨딩도 열심히들 해주시기 바란다.

자 그럼 각설하고... 수상작 발표.... 두두둥....

올해의 경기 - 라파엘 마르케즈 vs. 이스라엘 바스케즈 III

기념비적으로 높았던 기대치조차 넘어서버린 경기, 그 둘의 3연전을 "역사상 최고의 경기" 논쟁으로 승화시킨 경기; 복싱계의 두 신사간의 싸움이자, 두 정통 싸움꾼간의 싸움, 너무나 박빙의 승부에 면도날로라야 간신히둘을 갈라 놓을수 있었을 경기; 너무나 극적이고 잊을수 없는 마무리로 인해 시합을 - 3연전 역시 - 단숨에 "위대한 승부"의 자리에 올려 놓고 복싱의 전설로 남게 만든 그런, 영원한 경기.

간발의 표차로 WBVA 올해의 경기로 선정된 것은 바스케즈와 마르케즈의 밀고 당기는 스릴넘치는 전쟁, 그중에서 세번째 시합이었다. 앞서 열렸던 두 시합이 그 순연한 격렬함과 드라마틱함으로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그중 두번째 경기로 이미 2007년 올해의 경기상을 거머쥐었던 차라 이 세번째 시합이 더 볼만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혹시나? 에이 설마.

하지만,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그보다 더했다. 이전 두 시합에서 이스라엘과 라파엘은 바로 맞장뜨기 모드로 들어가 어딘가 부러질때까지 발동을 최대치로 올려댔다. 첫번째 시합에서 부러진 것은 바스케즈의 코뼈였고 두번째 시합에서는 케이오로 무릎을 꿇은 마르케즈였다. 하지만 이 세번째 대결에서는 어쩌면 이전의 만남에서 겪은 경험으로 인해서일까, 두 전사가 약간 숨을 고르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아주 약간만. 그 결과로 우리가 본것은 12 풀라운드, 경기의 주도권이 라운드 단위로 때로는 분 단위로 바뀌는 가운데 팬들이 의자까지 집어 던지면서 환호하게 만든 살육전이었다.

초 반 몇라운드에서 마르케즈가 복싱 실력으로 앞서나갔으나 그와 더불어 바스케즈의 파워가 순간순간 라파엘의 제어권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가슴조이는 걱정스런 순간도 있었다. 그러다 마르케즈가 다운을 뺏는다. 3연전중 바스케즈가 처음으로 캔버스에 쓰러진 것이다. 그러나 바스케즈가 강력한 파워의 반격으로 마르케즈를 따라잡으며 특히 바디공격으로,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록 조금씩 경기의 흐름을 바꾸어 갔다. 수차례 경고끝에 주심 게리 러셀이 마르케즈의 벨트라인 아래 가격에 대해 벌점을 주게 되고 이로 인해 막바지로 치닫던 경기는 바스케즈의 분전에 힘을 보태게 된다. 그리고 총공세를 퍼붓던 끝에 경기종료 직전에 뺏어낸 다운은 한편의 복싱 드라마의 절정이라고 밖에는 할수 없을 것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이 관전평의 중론이었지만 바스케즈가 간발의 차로 승리의 편에 서면서 자신의 수퍼 밴텀급 타이틀을 지켰다. 이후 마르케즈는 벌점과 다운의 적법성을 놓고 거센 불만을 토했다. 경기중 그가 보여준 투혼을 생각해보면 그 불만에 눈살을 찌푸릴수만도 없는 일이다.

네번째 시합은 열릴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양쪽 모두 그 이후로는 시합을 가지지 않은 상태이며, 이제는 어느 선수도 예전 같지 못하다 해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링에서 그만큼의 처절한 대결을 펼치고 견디어낸 선수들이 치러야 하는 댓가이리라 (알리와 프레이저, 카스티요와 코랄레스 등을 떠올려 보라). 그러나 앞으로 선수들이 앞날이 어떻게 펼쳐진다 해도 이들의 복싱이라는 스포츠에, 팬들에, 그리고 이상하게 들릴수도 있겠으나, 서로에게 선사한 것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올해의 선수 - 매니 파키아오

파키아오는 엘리트 복서 후안 마누엘 마르케즈와 강도 높은 경기를 펼친 끝에 그를 간발의 차로 누르고 수퍼 페더급 왕좌에 오르며 P4P 제왕의 자리를 굳혔다. 그 다음으로는 파키아오와 대결할 꿈이라도 꾸려면 적어도 앞서 말한 엘리트 대열에 끼어야 할 것임을 똑똑히 보여 주듯 데이빗 디아즈의 라이트급 벨트를 뺏으며 다섯 체급, 다섯번째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었다.

그러다 뭔가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우스운 서커스같은 미스매치 시합에 얽혀든 것이다. 훨씬 크고 몇체급이나 위에 있는 선수와,  어떤 전문가라도 이길 가망을 눈꼽만큼도 내어놓지 않을 그런 시합에 이름이 오가게 된 것이다. 아무리 잘해보았자 바랄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웃복싱과 잔꾀, 꼼수를 최대한 동원해서 세계 최상급 거인을 상대하고 판정승을 유도해내는 그림 외에는 없었다.

그러나 대신 파키아오는 팬들과 매체,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상대 오스카 델라호야를 깜짝 놀래켰다. 복싱계의 수퍼스타를 완벽히 침몰시키면서 일방적인 경기를 펼치고  2/3 되는 시점에서 델라호야가 불명예스런 경기 포기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2008 년 올해의 선수 선정 논의가 해당연도의 마지막 몇달을 남겨 놓고 시작되었다면 이 마지막 놀라운 수준의 압도적 경기 내용으로 논의 자체가 불필요했을 것이다. WBVA는 현격한 표차로 파키아오를 선정했다. 리키 해튼과의 초대형 수퍼 매치 이야기가 술렁이며 나오고 있는 마당이지만 설사 성사되지 않는다 해도 앞으로 파키아오의 메가톤급 이벤트는 많을 것이라 본다. 그리고 어느것 하나 손에 땀을 쥐지 않고는 볼수 없을 것이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이 필리핀 펀처에겐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 마닐라 핵주먹, 이 파키아오에게 말이다.

올해의 업셋 - 버나드 홉킨스 vs. 켈리 파블릭

B합(버나드 홉킨스의 별명)이 이번에는 좀 달랐다. 말싸움은 안 하는 건가? 인신공격은? 욕설 퍼붓기는? 뻔히 욕먹을줄 알면서도 으레 했을 "백인꼬마" 어쩌고 하는 커멘트는? 시합전 정신없이 떠들어대던 기세잡기의 달인이자 필라델피아 출신 악당은 어디로 간것일까? 목을 따버리겠다는 시늉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건가?

아 왜 그런지 알것 같네. 겁을 먹은 거군. 일단 나이를 더 먹었으니까. 오하이오 출신의 킬러와는 상대가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거지. 열두라운드를 이 힘넘치는 펀처와 맞붙어서 견뎌낼 자신이 없는거야. 조 칼자기와 윙키 라이트와 싸웠을 때 얼마나 지쳤었는지 잊지 않은거지. 대전료로 목돈을 챙길 마지막 기회이자 선수생활을 접고 프로모터로 새출발하기전 팬들의 환호소리를 들으며 조명을 받을 마지막 기회인거야. 그렇군. 고약한 시합이 되겠네. 처음으로  KO 당하는 꼴을 보게 될지도, 적어도 실컷 두들겨 맞는 꼴을 보게 되겠네. 정말 안됐어. 그래서 이렇게 조용한 거구만.

우리들이 헛짚어도 얼마나 크게 헛짚었는지 부끄럽기 그지없다. 버나드는 조용히 마음속의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매체와 팬들 사이에서 섞여 들려오는 야유의 소리를 들으며 불이 붙어오르도록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음의 에너지가 양으로 바뀌도록 분노를 달구고 있었다. 사실 매시합마다 그가 어떤 모양새로든 계속 해왔던 일인 것이다.

스코어 카드를 굳이 볼필요도 없는 경기가 끝난 후, 합킨스는 기억에 남을만한, 그리고 기억해야만 할 일을 했다. 기자석이 놓인 링사이드로 가서 섬짓하게, 분노에 찬 얼굴로 기자들의 얼굴을 하나씩 하나씩 노려보면서 강력한 침묵의 메시지를 보낸것이다.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도 너희들은 듣지 않았지. 다시는 날 무시하지 마. 다시는."

홉킨스가 무패의 파블릭을 철저히 농락한 가운데 열세의 라운드가 있다면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만큼 복싱기술, 펀칭, 전략, 전술, 모든 면에서 파블릭을 압도했다. 그의 우세가 워낙 명백하고 능욕적이러서 수많은 사람들이 대체 지금 보고 있는게 대체 가능이나 한 일인지 믿기 어려워 머리를 긁적였다. 또한 많은 이들이 이 시합이 젊은 사자 파블릭에게 미칠 장기적 여파에 대해 우려를 품었다. 과연 회복이 가능할까 싶은 호된 시련을 겪은 데다가, 과대평가 받았다던지 일차원적이라던지, 이미 모든게 노출된 선수라는 등의 표현들이 태연히 오가고 있는 참이다. 어쩌면 고스트(파블릭의 별명)와 같은 힘과 재능을 지닌 복서에게 부당한 처사일수도 있는 것이 시합상 매우 좋지 않은 스타일간의 매치였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배울건 배우고 어서 회복하여 더 훌륭한 선수가 되길 바랄 뿐이다.

이 시합의 승리로 홉킨스는 복싱 역사상 가장 탁월한 사십대 선수의 자리에 등극할수 있게 되었으며 여전히 복싱계의 영향력 있는 목소리로 남아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제 그의 경기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몇번 남지 않았겠지만, 파블릭에게 거둔 승리는 말그대로 선수로서의 시간을 되감아 놓는 일을 했으며 그와 더불어 만천하에, 학교 다닐때 선생님 말씀처럼 "잘 모르고 덤볐다간 니들 모두 큰코 다친다"는 교훈을 새삼스레 일깨우며 본경기를 WBVA 올해의 업셋 부분으로 선정되도록 만들었다.

올해의 KO
- 아미르 칸 vs. 브레이디스 프레스콧

사태가 진정되고 나니 상황 전반적으로 아이러닉한 면이 보인다. 본 시합에 냉소적이었던 이들은 지금쯤 편히 등 기대고 앉은채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하는 멘트를 날리고 있을 것이다. 초대형 유망주라고는 해도 아직 검증받지 못한 선수를, 비록 혼자서는 아니지만 전국 PPV에 내보내다니 하며 말이다. 칸 자신도 경력에 커다란 타격을 한방(정확하게 말하지만 여러방이겠지만 암튼) 맞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돈줄이 될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의 선수를 전혀 알려지지 않는 상대와 맞붙게 해놓고 팬들의 돈주머니를 털려고 했던 프랭크 워렌도 호된 댓가를 치른 셈이 됐다.

칸의 턱은 전에도 문제가 된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살짝 맞은 것도 그보다 처지는 상대가 던진 뒤늦은 일격도 아니었다. 첫라운드가 시작되고 몇초 지나지 않아 강력한 잽이 꽂히자 이 젊은 스타의 다리가 순간 비틀거렸고 팬들은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게임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그만큼 걱정할 시간도 많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두 선수가 서로 빙빙 돌던중 프레스콧이 크게 휘두른 레프트훅이 칸의 관자놀이에 적중하자 칸의 다리는 훨씬 더 격렬하게 흔들렸고 볼튼 출신 소년은 이미 깊은 수렁에 발을 들여 놓은 것과 다름없었다.

불의의 습격을 받으면 대개 선수들은 물러서거나 클러칭을 하기 마련이다. 그대신 칸은 어리석게도 상대 콜롬비안과 정면 승부를 내보겠다고 곧장 덤벼들었고, 그러나 오른손 스트레이트와 내려치는 천둥같은 레프트훅에 정확히 걸려들어 마치 술취한 일요일 아침의 선원처럼 비틀거리며 로프쪽으로 뒷걸음질쳤다. 이를 본 프레스콧은 장전 완료된 무기를 들고 거의 반사적으로 완벽한 레프트훅 한방을 마지막으로 칸의 턱에 날렸고, 칸은 링포스트 쿠션에 머리를 얌전히 내려놓으며 다시한번 캔버스에 쭉 뻗었다. 쓰러진 전사는 부질없이 다시 일어나려 애써보았지만 이미 경기의 끝이 다가왔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이 시합으로 프레스콧을 기대치 않았던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으며 동시에 올해의 업셋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해당 부문 수상은 못했어도 올해의 KO  부문에 선정되게 되었다.

올해의 오심 - 니콜라이 발루예프 vs. 이밴더 홀리필드

이 시합이 밴더 사령관(Commander Vander. 이밴더 홀리필드의 별명)의 마지막을 고할 비극의 한 챕터가 되리라 공공연히 전망한 사람들이 많았다. 홀리필드는 이미 오래전에 선수생활을 그만 두었어야 했다는게 중론이다. 경제적 문제와 오래전 아들에게 한 약속(다시 헤비급 챔피언이 되겠다는) 양쪽이 목을 옥죄어 온다 해도 말이다. 어쨌든 발루예프 측에서도 홀리필드와의 시합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차가예프가 부상으로 시합을 취소하는 등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다보니 홀리필드만이 이 러시아 거인을 바쁘게 만들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경기를 보고나서 든 생각인데 "바쁘게"란 표현은 아마 잘못 쓴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좋은 경기는 아니었다. 심지어 미적지근한 경기도 못되었다. 지ㄹㄹㄹㄹ루하기 짝이 없었다. 오간 펀치수를 다 합하면 뭐 두자리 수는 되겠지만, 어쨌든 시합중에는 참 보기 드물었다. 서로 좀 보다가, 잽을 주섬주섬 날리다가, 다시 서로 좀 보고는, 위치를 살짝 옮기고 그런 식의 경기였고, 보던 우리는 코를 골았다.

경기가 끝나고 나니 누가 더 잘했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아니 '누가 더 못했는지'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다. 발루예프는 시합내내 거의 덩치큰 조각상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고 그 와중에 홀리필드는 적어도 살살이라도 펀치를 날리는데 관심이 있어 보였다. 2:0 판정승으로 발루예프가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는 판정이 내려지자 스위스 관중들은 야유를 보냈다. 야유는 계속되다가 홀리필드가 코너에 올라가 손을 치켜들자 환호로 바뀌었다.

홀리필드는 경기 결과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제가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이겼어요." 시합 이후 홀리필드 측은 WBA에 공식적으로 항의하며 재시합을 요구했다. 그러나 WBA의 결정과 무관하게 재시합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게다가 발루예프는 "휴식중인 챔피언" 차가예프와 아직 풀어야 할 것이 남아있는 상태다. 이번에도 계속 그게 할렌스타디언에서 보여준 열정과 정성으로 시합에 임한다면, 우리는 "예티"라 장난삼아 부르는 이 사내를 상대로 차가예프가 별 문제없이 두번째 승리를 거두는 장면을 보게 될 듯하다.

어찌되었든 발루예프의 빛바랜 승리는 2008년 WBVA 올해의 오심 부문에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올해의 재기 - 안토니오 마가리토, 비탈리 클리츠코 공동수상

단 1퍼센트의 차이로 인해 "티후아나 토네이도"와 "무쇠주먹 박사"가 사실상 이 부문 동률을 이루었다. 따라서 WBVA는 2008년 올해의 재기 부문에 공동수상을 결정하였다.

2007 년 폴 윌리엄스와의 경기로 마가리토는 147파운드 체급에서 11년만에 첫 패배의 아픔을 겪었다. 비공식적으로 해당 체급 "최고의 기피 선수"로 낙인이 찍힌 그가 상위권 선수들과 경기를 가질 기회를 얻기란 오랫동안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복싱 팬들에게 대 윌리엄스전은 이해하기 힘든 경기였지만 윌리엄스는 아직 지명도가 떨어지는 선수였고, 따라서 판정 결과가 발표되지 "토니"는 다시 큰 경기를 기다리는 기나긴 줄의 맨 끝으로 다시 밀려나버린 것처럼 보였다.

200년 글렌 존슨을 간단히 제압하며 복귀하였지만 그의 진정한 재기는 커밋 신트론과의 재대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야 할것이다. 2005년 마가리토의 손에 허물어져 버린 이후 이 푸에르토 리코 선수 역시 재기의 아픈 시간을 보냈다. 다섯차례 연거푸 승리를 거두면서 그 길에 챔피언 벨트로 찼다. 이 재대결에서 마가리토는 신트론의 거센 공격을 모두 무력화시키고 결국 완벽한 몸통 어퍼컷 한방으로 6라운드 중반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다 음 상대로 마가리토는 비로소 그동안 그토록 갈구하던 종류의 기회를 얻게 된다. 바로 승승장구를 거듭하는 수퍼스타 미겔 코토와의 대전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마가리토를 무시할수도 부정할수도 없는 때가 온것이다. 투표에 참가한 많은 이들이 올해의 시합으로 지목하기도 했던 이 대전에서 마가리토는, 눈부시고 잔혹한 코토의 초반 공격을 용감무쌍하게 견뎌내고 끝내 챔피언십 라운드에 이르러 그를 캔버스에 무릎 꿇리고 말았다. 황금의 반지를 손에 넣고, 여러 대형 시합의 물망에 오르고 있으니 응징자(The Punisher. 폴 윌리엄스의 별명)에게 당한 패배의 아픈 상처는 신속히 아무는 듯하다. 코토와의 재대결을 볼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몇십파운드 위체급으로 올라가보면 또 다른 선수 (역시 전 챔피언) 하나가 주목할만한 재기전을 막 펼치려 하는 참이었다. 비탈리 클리츠코의 공백기는 무척이나 길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46개월이다. 그 뒤로 오랫동안 고대하던 하심 라만과의 시합을 준비하다 접었고, 한번 더 은퇴를 선언한 뒤 키예프 시장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고 그 후로는 K2에 발을 들여 놓고 작은(실제로는 안 작지만) 동생의 시합을 응원하는 쪽으로 정착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곧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아직도 건재하고 힘도 넘치고, 경쟁력이 있다고 믿었다. 조명과 환호, 그리고 승리의 영광스런 느낌이 그리웠다.

그런데 본인 빼놓고는 아무도 모를 이유로, 비탈리는 만만한 상대를 골라 쉽게 다시 스포츠에 발을 들여 놓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 행동을 비난할 사람을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신 "무쇠주먹 박사"님은 WBC 챔피언십 규정 가운데 타이틀을 잃지 않고 링을 떠난 챔피언은 누구라도 즉시 현챔피언의 의무방어전 상대가 될수 있다는 조항을 들고 나왔다. 그 챔피언은 새뮤얼 피터였다. 협상이 조금 오간 뒤 시합은 성사되었고 피터의 첫번째 타이틀 방어전으로 둘은 시월 독일에서 맞붙었다.

옆머리에 희끗희끗한 것이 좀 보였지만 그것 빼고는 클리츠코가 거의 사년 가까이 링을 떠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어려웠을 것이다. 시합은 독자들도 시청한 대로 일방적인 경기였다. 클리츠코가 내민 주먹은 거의 모두 피터의 네모꼴 머리에 정통으로 꽂혔다.  일분이 지나고 이분이 지나고 라운드가 흘러갈수록, 헤비급의 가장 흉악스런 펀처로 모두가 인정하는 새뮤얼 피터는 어째 비아그라 먹기전의 팔십대 노인보다 더 비실비실해 보였다. 결국은 구회와 십회 사이에 코너에 주저앉아 시합은 여기서 끝이라고 선언했다. 레프리를 코너로 불러 기권한 것이다. 바로 그렇게 비탈리 클리츠코는 동체급의 정예 대열에 다시 바로 복귀하게 되었다. 언론들은 대부분 비탈리보다 나은 선수로 그의 작은... 아니 어린 동생 블라디미르 외에는 없다고 보고 있다. 사정권 밖으로 완전히 빠져 있다가 시합 단 하나로 체급의 이인자로 돌아온 것, 과연 대단한 재기라고 밖에 볼수 없지 않은가!


올해의 "한때-잘나갔다가-이제는-도랑에-처박힌-개꼴" - 오스카 델라호야

일 년 전을 한번 되돌아 보도록 할까? 오스카는, P4P 최고의 복서로 공인받는 제왕 플로이드 메이웨더와의 역사상 최고의 대전료가 걸린 시합에서 불과 몇점차로 판정패한뒤 다시 재기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에 앞서 만화속 주인공 같던 리카르도 마요르가를 압도하며 손쉬운 경기끝에 육회만에 쓰러뜨렸었다. 복싱계의 선수로서 오스카는 여전히 만천하를 주무르고 있었다.

자 이제 그 뒤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짚어 보자. 메이웨더의 안식기간(은퇴라고 하기에는 미흡한게 많다)으로 인해 바로 재대결을 벌일수 없었던 그는 자리에서 물러날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정상에서 자리를 뜨고 싶었을 것이다. 본인 빼놓고는 아무도 모르는 이유로, '복귀전' 상대로 선택된 것은 스티브 포브즈였다. 튼실하지만 체구가 작은 (복싱 경력 대부분을 수퍼 페더급과 라이트급에서 보냈음) 포브즈는 오스카에게 전시용 시합 상대로 이상적이었다. 별로 위협이 될리가 없지 않을까? 정말? 결과적으로 볼때 예상은 맞았으나 "골든 보이"가 정확히 편하게 경기를 한 것도 아니었고, 들고양이와 뺨할퀴기 시합이라도 한 듯한 얼굴로 경기가 끝났다. 오스카의 경기후 얼굴 모양으로 우리가 익숙한 모습이 아니었고, 대충 넘겨 말한다 해도 적어도 어떤 불길한 징조처럼 보였다.

다음으로 델라호야는 한걸음 완전히 후퇴한다. 자신의 명성이나 상대의 위험성 어느것을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메이웨더의 공백으로 인해 P4P 왕좌의 자리에 오른 매니 파키아오의 이름을 상대로 거론한 것은 어느 HBO 시합 중계가 끝난 뒤 경기후 소감을 말하던 래리 머천트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몇몇이 귀가 솔깃했고 우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이미 오스카 대 매니라는 "꿈의 경기"의 성사 가능성 논의가 들려왔다. 해볼수는 있겠지. 서커스 공연보다 나을게 없겠지만. 이라는 반응이었다. 비록 지는 해라고는 해도 덩치 큰 친구가, 비록 전성기라고는 해도 작디 작은 친구를 찍어?  코미디하나? 완전히 동네 깡패구만 이 오스카라는 친구.

오스카에겐 어떻게 해도 좋은 그림이 안나오는 상황이었다. 이기면 상대도 안 되게 작은 상대를 두들겨 팼을 뿐인거고 지면 (물론 판정으로...?) 뭐, 상대도 안 되게 작은 상대에게 진거고 - 정말 안 좋은 경우인 거다. 하지만 그게 제일 나쁜 상황이겠지 안그래?

근데 안 그랬다.

더 세부적으로 파고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그날 밤 라스베가스에서 벌어진 비극은 오스카의 명성에 어느 누구도 미처 예상치 못할 정도로 치명타가 되고 말았다. 그냥 패배도, 심지어 그냥 경기 중단도 아닌, 완벽한게 제압당한 채 문자 그대로 굴복하고 말았다는 사실은 팬들이나 전문가들을 경악케 한 만큼이나 복싱계에서의 오스카의 입지에 상처를 입혔다.

또한 우리들에겐 앞으로 오스카에게 남아 있는 게 무엇일지 궁금증을 남긴다. 요점은 무엇인가? 물론 다시 링에 오를 것이겠지만, 우린 결코 다시는 그를 같은 시선을 바라보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그런 만큼, 2008년 WBVA가  선정한 "한때-잘나갔다가-이제는-도랑에-처박힌-개꼴" 부문의 불명예스런 수상자는 오스카 델라호야다.


올해의 처참한 몰매 -
매니 파키아오의 오스카 델라호야 도살전

사진으로 대신한다.


올해의 트레이너 - 프레디 로치

이 부문은 사람들 대부분 이론이 없다. 다른 후보들 표를 다 합쳐도 못 넘보는 몰표를 얻은 수상자는 "비교사절" 프레디 로치다.

매 년 그렇듯이 로치는 올해에도 여러 선수들 트레이닝을 맡았다. 그러나 사실을 인정하자. 우린 여기서 특별한 단 한 선수만에 대한 그의 업적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로치는 그 아주 특별한 복서를 완전히 레벨업시켜서 최대의 승리로 이끌었다.

우 선 로치는 트레이너들 거의 누려보지 못할 임무를 맡았다. 바로 복싱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상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대전자와의 경기에 자신의 선수를 대비시킨 것이다. 상대는 바로 후안 마누엘 마르케즈. 딴세상에서 온듯한 카운터펀칭 기술과 탁월한 링 장악력으로 둘의 첫대결에서 문자 그대로 파키아오에게 고생이란 고생은 다 안겨준 선수다. 전략의 달인 나초 베리스탄의 지휘아래 마르케즈는 초반의 열세를 극복하며 경기 중반 복싱 역사상 가장 놀랍다 일컬을 반격을 펼쳤다. 이차전은 액션으로 충만한 만큼이나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고, 결국 파키아오가 가까스로 판정승을 거둠으로써 올해의 시합 부문에도 유력한 후보에 올랐었다.

이 어서 우리는 대 데이빗 디아즈 전을 통해 파키아오가 로치의 지도하에 얼마나 성장했는지 뚜렷이 보았다. 그러나 로치의 예언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은 그 다음 시합이었다. 경기에 대한 어렴풋한 그림만이 그려진 상태에서, 로치는 파키아오-델라호야 전의 성사를 위해 갖은 애를썼다. 어르고 달래고 협상을 거치면서, 심지어 자신의 몫을 포기하면서까지 경기가 이루어지게 만들었다. 정신이 나간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며, 자기 선수가 막대한 대전료 한번 받게하려는 것 이상의 동기가 있을 수 있겠나 하는 오해도 샀다. 예상대로 시합이 진행된다면 아마도 매니(파키아오)가 오스카의 펀치를 잘 피해서 근소한 차의 판정승을 거두는 것 정도의 희망은 품을수 있을것이라고들 보았다. 그래도 위험부담은 여전히 높았다. 하지만 로치는 개의치 않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대 메이웨더전을 위해 로치가 잠시 델라호야 트레이닝을 맡았을 때 무언가 깨달은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쏟아졌던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꿈의 경기" 첫 라운드 공이 울리자마자 결국 로치의 예상이 한치도 틀림없이 옳았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예상처럼 그건 다윗 대 골리앗의 싸움이 아니라 정확히 반대였다. 마치 순한 곰에게 덤벼드는 굶주린 늑대의 싸움을 보는것처럼 몰락의 장면은 처참했다.


다른 것을 다 차치하고 이 시합 단 하나만으로도 프레디 로치에게 올해의 트레이너 수상의 영예를 안긴다.


올해의 선수입장 부문 - 전 챔피언들의 코러스속에 등장하는 비탈리 클리츠코


거대한 벨소리가 울린다. 불이 꺼진다. 관중들은 기대와 혼란속에 숨을 죽인다.

큰 TV 패널로 만들어진 홀이 안개에 싸인채 빛을 발한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다리없는 유령 하나가 패널중 하나에서 나타나 스타워즈 속의 홀로그램처럼 떠다닌다. 그 대머리 유령은 팔짱을 끼고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고개를 치켜든다: 빅 조지 포먼이다.

조 지의 말 - 나는 조지 포먼이요. 아직도 최고령으로 세계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기록을 가지고 있소. 비탈리, 잘 들어요! (주먹을 꽉 쥐고서) 이길 수 있어요! 오늘! 그 어떤 때보다도 멋지게 재기할수 있어요. 온 세계가 기다리고 있어요. 이제 조 프레이저의 말을 들을 차례요....

벨이 계속 음산히 울리는 가운데 왼쪽을 본다.

두번째 유령이 챙넓은 검은 모자를 쓰고 나타난다. 그 역시 팔짱을 끼고서 굽어 보고 있다.

"그렇지! 내가 굴뚝 조 프레이저, 전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요. 무하마드 알리 어쩌고 저쩌고(?) 링의 제왕이요. 비탈리, 이제 당신이 역사를 이룰 차례요. 다음은 루이스요."

이제 오른쪽을 본다. 레녹스 루이스의 모습이 떠돌아 다니고 있다.

"그럼, 내가 헤비급 챔피언 레녹스 루이스요. 비탈리, 그대와 나의 시합이 헤비급 역사상 최고의 시합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 알고 있소. 오늘 승리는 당신의 것임을 믿소. 이밴더!"

이제 이밴더 홀리필드가 보인다.

이밴더 - "역사상 유일하게 헤비급 타이틀을 네번 차지한 이밴더 홀리필드요. 비탈리, 재기가 힘들다는 것 나역시 잘 알고 있소. 세번이나 해보았으니 말이요. 오늘 경기? 당신도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마이크? 할 말이 있소?"

우리는 오른쪽에서 마지막 등장인물을 본다. 물론, 그것은...

마이크 타이슨 - "물론! 나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요. 비탈리 난 항상 당신의 팬이었소. 드디어 돌아 왔군요. 자 이제 나와서 멋진 경기를 보여주시오!"
 
그리고 AC/DC "Hell's Bells"의 전주 기타 멜로디가 들려 온다. 아, 이제 그 벨소리가 무슨 뜻인지 좀 알 것 같다...


올해의 라운드 홀트 vs. 토레즈 2차전 1라운드

이 부문의 명칭은 "올해의 라운드"이지만 수상작을 놓고 본다면 "올해의 일분(Minute of the Year)"이라 해도 좋을듯 하다. 리카르도 토레즈와 켄들 홀트의 이차전 첫라운드이자 유일한 라운드는 보통 수준의 경기 몇개를 합쳐 놓은 만큼의  액션과 흥미를 선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둘의 첫 대결이 다운과 오가는 액션뿐만 아니라 기이한 경기 중단 및 말많은 판정으로 가득하긴 했지만 재대결이 모-아니면-도 식의 풀액션이 될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둘이 공이 울리자마자 튀어나오고 토레즈가 즉시 강펀치를 폭발시키면서 몇차례 레프트훅에 이은 막강 라이트 펀치로 켄들을 매트에 뉘었다. 홀트는 발딱 일어나서 멋적은듯한 웃음을 얼굴에 흘리며 나머지 카운트 세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토레즈는 자신에 넘쳐 즉시 재공격에 나서서 연발 공격을 날렸다. 양선수가 맞장을 뜨고 불처럼 서로에게 달려들었으나 홀트가 한차례 더 불운 끝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여기까지 불과 경기 시작후 35초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 주목할만 하다). 홀트는 다시 바로 일어났으나 그러던중 레즈에게 불의의 일격을 얻어맞았다. 레프리 제이 네이디는 그러나 이에 대해 주의를 주지 않았다.


한차례 더 홀트는 카운트 에잇을 받아야 했으며 끝나자 마자 역시 한차례 더 지옥끝까지 가보자는 듯 맞붙었다. 이순간까지 대부분의 관중들은 홀트가 안됐다는 생각으로 큭큭댔으며 전라운드는 커녕 이번 라운드를 버티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붙붙는듯한 접전 가운데 토레즈가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머리가 충돌했고 다시 뒤로 빼게 되었다. 홀트가 즉시 이를 놓치지 않고서 토레즈의 움직임을 재어 필살의 라이트 펀치를 날렸다. 토레즈는 그 자리에 죽은듯이 무너져 내렸다. 네이디가 카운트를 시작했으나 셋까지 센 뒤 손을 내저었고, 홀트는 반대편 링포스트를 딛고 올라가 승리의 기쁨에 환호했다.

55초가 흘렀고, 홀트의 재수없는 하루를 예상하며 큭큭댔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펫으로 튀어나간 나초를 치우느라 시간 좀 썼을 것이다. 복싱 역사상 가장 극적인 반전의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올해의 파이트 카드

공동수상

Antonio Margarito KO 11 Miguel Cotto,
supported by Bernabe Concepcion KO 3 Adam Carrera,
Mike Alvarado KO 4 Cesar Bazan,
and Cesar Canchila UD 12 Giovanni Segura

Manny Pacquiao KO 9 David Diaz,
with Francisco Lorenzo DQ 4 Humberto Soto,
Steven Luevano D Mario Santiago,
and it started with Monte Barrett KO 1 Tye Fields


올해의 희한한 경기 - 레프리 알프레드 가르시아, 프로모터 아메트 외너가 윌리엄스 vs. 아이리히전에서 벌인 수치스런 행위

이 헤비급 경기도 다른 경기들과 다를것 없이 시작했다. 아이리히가 살벌한 바디 공격을 펼치면서 기선제압에 나섰고 윌리엄스도 난타전에 일가견이 있는 터라 예전의 경기에서와 마찬가지로 공격을 잘 견디어 냈다. 윌리엄스의 한차례 바디 공격이 벨트라인 아래로 내려가서 레프리 가르시아로부터 주의를 받은후부터 이상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약 일분여 지나고 "브릭스턴 폭격기"의 두번째 로우 블로우에 아이리히가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몸을 굽히고 항의의 표시로 한쪽 코너로 물러났다. 윌리엄스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듯 경기의 중단과 심판의 재차 주의를 기대하며 역시 물러섰다. 그러나 가르시아는 경기를 보던 사람들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행동을 한다: 아이리히에게 스탠딩 다운을 선언하며 카운트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는 윌리엄스에게 다가가서 반칙에 대한 벌로 2점 - 단 한차례의 경고와 파울에 대한 벌칙치고는 너무 가혹한 -을 빼앗았다. 가르시아의 기이한 행동은 몇분뒤에 두 선수가 펀치를 주고받은 뒤 심하게 뒤엉킨 상태에서 둘을 떼어 놓으려다가 실패한 데에서도 다시 드러났다. 심판이 경기를 이끌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이 장면이 증명하고 있는 와중에, 사태는 더욱 심각해져 갔다.

세번째 장면은 윌리엄스가 아이리히의 가공할 오른손 공격에 심하게 충격을 받은 뒤 상대에게 헤드락을 걸어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나는 순간으로, 가르시아는 손가락을 흔들며 "No!" 경고를 주었다. 몇초후 윌리엄스가 다시 위기에 몰렸는데 가르시아에겐 선수가 실제로 캔버스에 몸이 닿는 행위가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 듯 다시 스탠딩 다운 판정을 내렸다. 그뿐만 아니다. 가르시아가 "2"로 카운트를 시작한 것은 "다운" 선언을 한뒤 7초나 지난 뒤였다. 윌리엄스는 계속 제정신이 아니었던게 그 뒤로 계속 상대를 붙잡고 늘어졌고, 가르시아로부터 더 거친 경고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다 라운드 종료 직전 스트레이트 라이트가 윌리엄즈를 강타했고 가르시아는 다시 불가사의하게 스탠딩 에잇 카운트를 시작하며, 윌리엄스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가르시아가 카운트를 계속하는 동안 윌리엄스는 글러브 한쪽에 잘못 감긴 테이프를 전부 벗겨내느라 바빴다.

두 선수가 4 라운드에 나서는 것을 보니 윌리엄스는 꽤 회복이 된것으로 보였는데 주심 레프리는 여전히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것이 틀림없었다. 라운드 중반 윌리엄스가 거세게 밀어붙이며 아이리히를 물러서게 만들었다. 윌리엄스의 라운드가 명백했는데, 불과 몇초 남기고 윌리엄스가 아이리히의 잽을 피하다 미끄러져 넘어진 것을 다운으로 간주하였고, 팔을 내뻗고 거세게 항의하는 동안에도 카운트는 계속되었다.

5라운드에 두 선수는 펀치를 주고 받으며 대부분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그런데 약 일분여를 남기고 가르시아가 갑자기 윌리엄스에게 성을 내면서 버럭 소리를 지르고 벌점을 매겼다. 리플레이를 보니 윌리엄스는 별문제없는 깨끗한 공격을 펼치는 중이었는데 가르시아가 경기를 중단시킨 것이었다. 몸짓으로 보아 가르시아는 벨트라인 아래 가격이 있었다고 여기고 폭발한 듯 했다. 그리고는 라운드 종료 약 2초를 남기고 윌리엄스가 첫번째 다운을 뺏었다. 그러나 카운트가 8까지 끝나고도 타임키퍼는 딴세상에 가 있는 것인지 라운드가 끝났다는 공을 울리지 않았다. 가르시아가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벨이 울리기까지는 이미 수 초가 지나버린 후였다. 다운 당시 상황을 다시 돌려 보니 아이리히의 발이 링 밖으로 미끄러지면서 링주위에 놓여있던 광고대를 걷어차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리히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윌리엄스는 직전 라운드의 기세에 힘입어 시작부터 강펀치를 휘두르며 나왔고 일분만에 아이리히에 치명타를 날리고 다운을 뺏었다. 이 경기의 가장 기이한 일은 이제 일어난다. 윌리엄스가 무너지는 상대에 다시 덤벼들며 경기를 마무리하려 하는 참에 갑자기 공이 울렸다. 라운드가 시작한뒤 겨우 절반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프로모터 아메트 외너가 다운이 일어난 뒤 타임키퍼 테이블에 가 있는 장면이 또렷이 보였다. 그는 차분히 해머를 들고 공을 울린다. 두 선수가 각자 코너로 돌아간 후 (아이리히가 둘중 더 상태가 안좋았음) 로컬 오피셜이 외너에게 다가가 비난하는 장면이 보인다. 외너가 테이블을 가리키며 뭔가 항의의 답변을 한다. 여러 사람들이 조사를 위해 오가는 도중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장면도 잡혔다. 한편 타임키퍼는 관중들로부터 야유와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자 무슨 일인지 주심 가르시아가 물어보러 오자 자신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린다.
 
이 모든 혼란이 무색하게도 7라운드 25초 경과후 윌리엄스의 잇단 공격으로 아이리히의 코너에서 타월을 던짐으로서 한편의 소동은 막을 내렸다.

" 복싱의 오점"이란 표현은 남용된 감이 없지 않으며 그렇게 불릴만한 시합은 몇 없다. 그러나 이 경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표현에 딱 어울리며, 또한 우리의 "올해의 희한한 경기" 부문에 선정되었다. 외너의 사기 행위만으로도 자격이 된다. 앞으로 그의 미래는 어떨지, 그가 연루될 시합들은 과연 어떨지 상상해볼 뿐이다.

올해의 유망주 - 유리오키스 감보아

WBVA 올해의 "지평선에 떠오르는 밝디밝은 빛같은" 유망주 수상자만큼 기대도 천부적 재능도 언론에 노출도 많았던 신진 선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해에 다섯 차례(신인치고는 놀라울만큼 활발한 축이다) 경기를 치렀고 그중에 네 경기가 HBO/ESPN 등을 통해 중계되었으며, 자신감 넘치는 공격을 펼치다 본인 역시 두차례나 캔버스에 나자빠지는 것을 보았다. 이제 질문은 이것이다: 감보아의 타고난 신체적 재능과, 자존심 + 유리턱의 2종 선물세트 중에 더 흥미로운 것은 어느 쪽이 될것인가?

어느 경우가 되든 감보아는 이미 복싱계의 차세대 수퍼스타 가운데 한사람으로 점쳐지고 있으며, 혹시나 그렇게 되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경기를 펼치는 한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안겨줄 것이 거의 틀림없다.

Monday, June 08, 2009

빌 브라이슨의 책들

최근 번역된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어산책(Made in America)"을 보았다. 400페이지 남짓한 책을, 자형을 키우고 여백을 잔뜩 넣어 무려 670페이지로 불려 놓고, 어떻게든 먼저 나온 저자의 다른 책들 지명도 덕을 보겠다고 제목에 "발칙한"을 억지로 넣고 부제에는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를 역시 억지로 구겨넣은 것을 제외하면 무척 훌륭하다.  큰 길을 따라 가면서도 곁곁으로 나 있는 수많은 오솔길들에도 따스한 눈길을 던지는 저자의 장기가 이 책에서도 잘 살아 있다. 수많은 일화들에 끊임없이 한눈을 파는 것을 봐도 그렇고, 쓰는 책의 분야가 여행기, 전기, 언어학, 역사, 잡학사 등등을 일관성없이 오가는 것을 봐도 그렇고, 빌 브라이슨의 MBTI 성향은 아마 ENFP가 아닐까 짐작한다. 뭐 그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빌 브라이슨이 쓰면 어떤 것이라 해도 일단 무척 재미가 있으니 좀 더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품는다면 기쁠것 같다.

2006년에 빌 브라이슨이 회고록을 내놓았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많은 작가들이 글감이 떨어지면 보통 자기 어렸을때 이야기를 책으로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 사람도 혹시 드디어 그런게 아닌가 싶었으나 다행히 별일 없다는 듯 다음 해에 셰익스피어에 대한 색다른 책을 내놓았다. 아마 이 책도 곧 번역되지 않을까 기대해 봐야겠다.

2005년 6월 백수로 빈둥거리던 시절, 빌 브라이슨의 책을 보고서 다른 게시판에 토막글을 쓴 적이 있었다. 여기 옮겨 보면:

 
뚱보 에세이스트 빌 브라이슨이 역시 만만찮은 뚱보 친구와 함께
좌충우돌하며 3,300Km의 애팔래치아 산맥을 종주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쓴“나를 부르는 숲(A Walk in the Woods)”을 얼마나
재미있게 봤는지 모르겠다.

거긴 참 좋기도 하지만 걷다보면 곰이 나온댄다...

빌 브라이슨의 에세이로 처음 본것은 우연히 마주하게된
”The Mother Tongue“이라는, 영어의 여러가지 흥미로운 면들을
살펴본 에세이 모음이었다. 고종석씨의 책과 함께, 나와 같은 아마추어
링귀스트들의 호기심과 지적 욕구를 가득가득 메워주는 책이었다.
최근엔 “거의 모든 것들의 역사”라는 베스트셀러를 쓰기도 했다.

그런데 브라이슨에게 명성을 안겨다 주었고

또 그의 진가가 가장 잘 발휘된 분야는 바로 여행기라고 한다.

지난번 배낭여행때도 그의 에세이를 한권 사서 읽으며

미처 못가본 도시와 지역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이게 내가 본 그의 네번째 책이 된다.

상당수의 여행기들이 “몇시에 일어났다. 가이드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어쩌고..“하면서 일지를 그대로 옮겨 쓴듯 한심한 꼴을 하고 있는데
비해 브라이슨의 여행기는 1) 유익하며 2) 웃기다는 두가지 특성으로
요약할수 있다. 심드렁하게 둘러보면 아무것도 아닌듯한 곳에 활기를
불어넣으며(물론 변변찮으면 막 욕을 퍼붓기도 한다), 또 끊임없이
개그맨처럼 자학과 희화화를 거듭해서 푹 하고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주말에 형님 가족과 있다가 문득 그 책 이야기가 나왔는데,
귀가 솔깃한지 책을 빌려갔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랑 형은 참 여러가지가 다르다.
다년간의 보디빌딩으로 다져진 근육에
소주 네병을 끄떡없이 마시고 아직도 일주일에 두세번은
새벽 3시에 집에 들어와 5시면 일어나 출근하는 강철인간이다.
(내생각엔 점심시간때는 어디 숨어 자는게 틀림없다고 본다)
결혼하기 전에는 주말만 되면 ’우간다‘라는 희한한 이름의
동아리 사람들과 전국의 온갖 산을 올라갔다 내려오곤 했다.
결혼 후론 식구들과 대신 이마트를 오르내리고  있다.

그 책이 오랜만에 그런 형님의 피를 끓게 한 모양이었다.
‘같이 산에 안 가고 싶냐’하고 낮에 느닷없이 전화가 왔다.
난 뭐 그렇게 등산, 하이킹을 좋아하는 편이라고는 할수 없지만
요즘 매일 달리기하면서 체력도 좀 좋아진것 같고, 사실 나도

그 책을 보면서 조지아 주에서 메인주까지, 14개주에 걸쳐 이어지는
거대한 (곰도 나오는) 하이킹 트레일을 종주해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던 차라,


그렇게까진 못한다 하더라도 지리산에는 갈수 있지 않겠나 싶어
그럽시다요 하고 낼름 맞장구치고,
아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등산화란걸 사와서 신어보고 들떠 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형과 등산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상쓰면 내가 여전히 좀 쫄긴 하지만,
이제는 친구같은 형님과 여행을 한다니, 크하하, 재밌겠다.
산장은 벌써 다 예약으로 꽉찼댄다.

텐트는 힘 좋은 형이 지고 가라고 해야지.


곰 만나면 잡아 오겠다고 했더니 조카들은 아주 좋아하면서, 아빠곰
말고 아기곰을 잡아 오라고 했다. 귀여운 놈들.


  (저 지리산 산행은 다음날 정상 등반을 앞두고 잠을 청한 세석산장에서 그만 호된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어떻게 올라갔는지 어떻게 내려왔는지 기억도 제대로 안나는 안개속같은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다.)

 
위에서 쓴 것처럼 브라이슨의 글로 처음 읽은 것은 진지한 내용이라 언론인 출신 재야의 언어학자일 것이라고 짐작하였으나, 호주 배낭여행길에 우연히 집어든 호주 여행기 "Down Under" (미국판 제목은 In a Sunburnt Country)를 보며 정말 많이 웃었다. 멜버른의 유스호스텔 같은 방에 묵던 한 영국 학생이 두고 나간 책을 살짝 집어 보다가 무척 마음에 들어 냅다 사가지고 보면서, 그 뒤로 이어진 기나긴 버스 여행의 지루함을 잊었다. 여행중 보관을 잘 못한 탓에 책이 좀 낡았지만 이곳저곳에 적어둔 감상과 당시 상황등이 남아 있어 이따금 다시 들춰 볼때마다 여행때의 감흥이 되살아 난다. 이 책이 "나를 부르는 숲"보다 좀 더 빌 브라이슨의 개그 실력이 잘 발휘되어 있다고 본다. 아무래도 애팔래치아 산속보다 호주에 좀더 재미있는 것이 많아서 그럴거다. 내가 보기엔 영국 사람들이나 호주 사람들이나 다 그게 그거 같은데 (대충 봐서 그런가)... 책은 예전에 그가 호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읽었던 놀라운 사실 - 호주의 수상 중 한명이 해변을 거닐다가 갑자기 몰아닥친 파도에 휩쓸려 가서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은 사건을 언급하며 시작한다. 놀라운 이유로 그가 든 것은:
  1. 그래도 일국의 수상인데 어떻게 혼자 그렇게 돌아다니다 '사라질' 수가 있다는 말인가
  2. 어떻게 이런 뉴스가 언론/출판에 종사하는 저자가 모르고 지나칠수 있었단 말인가
그의 조사에 따르면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가 들썩거렸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1997년 전체에 걸쳐 뉴욕 타임즈 지상에 호주에 대한 언급은 딱 스무번 나올뿐이었다고 한다 (비교 차원에서 페루에 대한 기사는 120 차례, 알바니아/캄보디아는 150, 한국은 300 차례나 언급되었다). 그나마 그 해는 다행히 많은 편이고 1996년은 아홉번, 1998년엔 여섯번이 전부다. 이런 대단히 지엽적이지만 알고나면 참 기가막힌 일화들이나 사실들을 부지런히 찾아내 책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드는 재주가 돋보인다.

요즘은 무슨 일에 귀가 솔깃하여 관심을 쏟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브라이슨도 블로깅을 할까?


Saturday, May 09, 2009

전자책 편력기

벽에 꽂혀 있는 CD들을 보면서 늘 디지털 멀티미디어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꺼워 하는 사람인 만큼, 내 독서 세계가 역시 디지털 문화의 세례를 흠뻑 받았으면 하는 바람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 습관과, 채 버리지 못해 늘어나만 나는 책들을 수납할 공간이 없어 식구들의 원망을 날마다 받고 사는 처지로 인해, 나는 더더욱 전자책이 내 독서 생활의 주축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은 전자책 읽기를 몸에 익히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자꾸 애쓰다 보면 편해지겠지. 종이책 읽는 것처럼, 하는 바램으로.

그렇게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던 전자책과 친해지기 프로젝트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내게 딱맞는 전자책 디바이스의 입수였다. 들고 다니기 편해야 하고, 여러 책 포맷을 지원해야 하고, 배터리의 수명이 넉넉해야 하는 등의 기본적인 바램이 있었으나 과연 어떤 기기가 그 바램을 만족시켜줄 것인지는 직접 구입해 오래 써보기 전에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다음의 리뷰들은 그러던 내가 그동안 구입하여 써보았던 몇가지 전자책 디바이스에 대한 짧은 편력이다 (마지막 몇가지 전용 전자책 기기를 제외하면 나머지 기기들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전자책 적합여부를 삼는 것은 다소 공정한 일은 아닐것이다. 각각 제 나름대로 훨씬 더 값진 용도가 있었을 것이니 이 글에 실린 기울어진 시각으로 내린 판단은 적당히 감감하여 읽어 주시길 바란다).

1) Sony VAIO PCG-C1VN Picturebook

소니에서 내놓은 서브노트북이다. 저전력 소비를 위해 트랜스메타 칩을 적용하고 1024x480의 해상도에 일반 소설책 크기를 하고 있는 이 기계가  내가 처음으로 설레는 마음과 함께 구입해 전자책 읽기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첫 제품이다. 2000년 무렵에 나온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사양과 제원이었는데 가격 역시 걸맞게 혁신적이었다($3000). 2004년 중고로 ebay에서 900불을 주고 구입하였다. 요즘 나오는 넷북과 유사한 크기다.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이것이 윈도우즈 기반의 PC 라는 사실이다. 알고 있는 모든 포맷의 책들을 이미 입수 가능한 뷰어 프로그램을 통해 쉽게 볼수 있다. 휴대에 적당한 크기와 무게, 탁월한 포맷 지원으로 인해 아주 이상적인 전자책의 후보였다.

그러나 전자책으로서의 이러한 장점을 다 깎아 먹고도 남을 단점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배터리 수명이었다. 2시간도 채 안되어 비틀거리며 바닥을 치고 경고 메시지가 퍽퍽 떠오르는 탓에 가슴이 조마조마해 맘 편한 독서를 할수가 없었다. 결국 이 노트북은 휴대용이 아니라 항상 전원 케이블을 단채 자기전 침대 위에서 독서할때나 이용가능한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버렸다. 내게 전자책의 필수 기능으로 배터리 수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준 좋은 경험이었다.

또 하나 크지는 않지만 마음에 걸렸던 것은 느린 부팅 속도였다. 책이 보고 싶어 전원을 넣으면 느릿느릿 진행되는 윈도우즈 부팅 시간이 얼마나 길고 답답하게 느겨지는지 모른다. 실제로는 얼마되지 않겠지만 부팅이 비로소 다 되고 나면 어느새 독서욕이 살짝 줄어들어 있음을 느끼곤 했다. 윈도우즈 및 기타 데스크탑 운영체제의 한계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터리 문제는 보조 배터리를 몇개 더 구입하여 휴대하면 간단히 해결될수도 있는 문제였다. 출장 등으로 이동이 잦은 무렵엔 실제로 업무용 노트북을 위해 배터리를 하나 더 마련해서 유용하게 쓰기도 했는데, 그 당시엔 그 생각이 그다지 탐탁지 않게 느껴졌다. 만만치 않은 배터리 가격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2) HP Jornada 720

HP에서 내놓은, PDA의 명품 가운데 하나라 일컬어지는 휴대용 컴퓨터다. HPC(Handheld PC)라고 분류되는, 640x240의 가로로 길쭉한 스크린에 소형 키보드가 달려있고, 화장품 컴팩트처럼 접혀지는 Windows CE 기반의 PDA다.  ebay에서 상태 좋은 중고를 250불에 구입하였다.

뒤에 나열할 여러 제품 가운데에서 아직도 조나다로 읽은 전자책이 가장 많다는 사실은 이 기기가 제법 전자책 디바이스로 뛰어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상당한 수의 PDF 파일과 CHM, 일반 텍스트, 그림파일로 캡처한 책들을 조나다로 읽었다.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는 말은 전자책에 대해 할수 있는 상당한 찬사에 가깝다.   CHM 뷰어는 내가 직접 만들어서 아주 잘 써먹었다.

그 어떤 기기보다도 휴대가 편하다. 500그램 정도의 날렵한 무게와 일반책을 반정도 접어 놓은 크기로, 가방에 넣고 다니기 딱 좋았다. 외장 컴팩트 플래시를 꽂으면 수백권의 책이 들어간다. 탁월한 배터리 수명으로 인해 읽다가 배터리가 다 닳는 일이 한번도 없어 가슴 졸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정말 돋보이는 WinCE의 순간 부트 기능으로 전자책이 PC가 아닌 가전제품이라는 인식을 새삼스럽게 하게 만들어준 기기이기도 하다.

이미 오래전에 생산이 중단되었지만 끊임없이 중고 제품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이 제품이 지니고 있는 여러가지 매력이 아직도 시효가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ebay나 국내 khug.org에서 약 20만원 정도에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독서에 조나다를 활용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 하다(사실 무슨 휴대용 디바이스든간에 독서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로 해상도가 매우 낮아서 영문 텍스트라면 그런대로 괜찮지만 독서 속도가 빠른 한글 텍스트를 조나다로 읽다 보면 너무 아래 스크롤 키를 자주 누르고 있다는 생각에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가장 큰 단점이라면, PCTN 방식을 적용한 LCD 스크린의 치명적인 한계다. 직사광선 하에서는 전혀 화면이 보이지 않는 점이다.

3) SONICblue Progear Tablet PC

조나다의 작은 화면이 마음에 걸릴 때쯤, 배터리 문제가 있을것을 뻔히 알면서도 "집안에서만 쓰겠다"는 결심에 구입한 것이 이 타블렛 PC다. 마이크로소프트가 Windows XP 타블렛 에디션을 내놓기 한참 전에 나온 아마도 세계 최초의 태블릿 PC 모델 가운데 일것이다. Win98 내장 PC인데($1500),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생산이 중단된 때에 마침 관심이 갔던 탓에 ebay에서 500불을 주고 중고로 구입하였다.

용도와 한계를 어느정도 알고 구입한 장비인 탓에 큰 불편이나 아쉬움없이 잘 썼다(역시 만족감은 기대와 반비례하는 법이다). 원래 돌던 98을 지운뒤 Windows XP를 깔고 극심한 트위킹 작업을 해서 속도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했다.  초상화 모드로 놓은 768x1024 해상도의 이 기기는 PDF나 만화책 한페이지를 온전히 보여주어 아주 독서감이 좋았다.

예상했던 대로 배터리 문제가 치명적이어서 전원 케이블 없이는 불안한 마음에 독서가 잘 되지 않았다. 또 한가지 예상치 못한 단점은 설치한 XP가 이 키보드 없는 기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조작(페이지 넘기기)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점이었다. 특히 풀스크린으로 놓고 보아야 만족스럽던 Acrobat PDF를 쓸때는 앞뒤 넘기기나 임의의 페이지로 이동하기 위해 가상 키보드를 주섬주섬 띄워서 입력해야 했는데 그때  스타일러스 조작 실수가 잦았다. 유저 인터페이스의 한계가 드러났던 기기였다. 그리고, 한손으로 들고 보기엔 좀 무거워서 손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보통 무릎에 올려 놓게 보게 되었다.

이 책으로 신나게 보았던 Rule of Four나 수많은 컴퓨터 책들 CHM 파일들이 떠올리면 흐뭇하다.

4) SimPAD SL4

조나다보다 화면이 넓고 배터리 수명이 그만큼 오래가는 WinCE 디바이스를 물색하다 망에 걸려서 수소문끝에 구입한 것이 독일 지멘스사의 웹패드(WebPad)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제품의 한종류인 SimPAD다. ebay에서 190불을 주고 어댑터가 빠진 재고품을 구입하였다. 아마도 조나다 이후로 가장 독서를 많이 했던 기기가 아닌가 싶다(이 기기를 구입했을때 백수 처지라서 책 읽을 시간이 훨씬 많았던 탓도 있다...).

8인치 800x600 해상도의 화면에 WinCE가 돌아가는 이 제품은 조나다의 사용느낌과 비슷했다. 조나다와 비교했을때 장점으로 돋보였던 것이라면 화면이 커서 자주 키 조작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던 것이고(키보드는 없지만 기본적인 스크롤키와 핫키가 달려 있어서 책장 넘기기에 적합했다), 단점이라면 플래시 메모리 리더 기능이 없어서 PCMCIA 슬롯에 어댑터를 이용해 CF 메모리를 장작해야 했다는 점이다. 특별히 불편하다고 할수는 없겠지만, 껐다 켤때마다 무슨 이유인지 플래시 메모리가 다른 이름의 디렉토리로 잡혀서 인식시키기/계속 읽기 등을 하는데 다소 귀찮고 번거로왔다. 직사광선 아래서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점은 마찬가지로 답답했다.

5) ViewSonic ViewPad 100

이건 특별히 필요해서가 아니라 호기심에 그냥 사고 싶은 유혹을 못 이겨서 샀다. SimPAD와 거의 모든 면에서 동일한 웹패드인데 화면이 10인치로 널찍하고 CF 슬롯이 내장되어 있어서 조나다, 심패드와 이런저런 장단점을 공유하는 기계다. 좀 묵직하고 크다. 자주 안 쓸것을 알면서 왜 샀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들고 다니기에는 심패드의 크기가 최대라는 점을 확인했다.

6) Sony Librie EBR-1000

발표시 이제 더이상 전자책 기기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느낌에 가슴 설렜던  혁신적인 기기다. 구입 당시 일본에서만 판매가 되고 있어서 구매 대행업체 Nippon shop을 통해 42만원을 주고 구입하였다.

아, 전자 잉크의 놀라움이란. 일반 종이와 전혀 차이를 느끼지 못할 탁월한 독서감에, 배터리 문제를 거의 완벽히 해결한 초저전력에 초경량의 이 제품에 이상적인 전자책 하드웨어의 종착역이 가까이 왔음을 실감했다. 장점은 새삼스레 되풀이할 필요가 없을것 같다. 그 어떤 전자책 디바이스와 비교해도 독서감이 탁월하다. 전자책을 써보고자 하는 분들께 아무런 거리낌없이 추천하고 싶다.

단점역시 새삼스레 되풀이할 필요가 없을만큼 잘 알려져 있다. 이 멍청한 소니가 전용 프로텍션을 걸고 60일만 독서가 가능한 희한한, 자체 온라인 샵에서만 구입이 가능한 책으로 인식 포맷을 제한해 놓은 사실은 그 하드웨어적 탁월함에 비해 얼마나 어리석게 보이는지 모른다.

다행히 이러한 단점은 열렬한 애호가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극복되고 있다. 전용 포맷을 소니에서 공개함에 따라 , 프로텍션이 안 걸린 전용 포맷의 파일을 생성해주는 유틸리티가 개발되고, 소니가 공개한 개발 툴/소스와, 리눅스 기반의 동작 환경은 일부 매니어들의 도전을 자극하여 SDK 수준의 일반적은 뷰어의 개발이 가능하게 되었다. 현재 야후 그룹의 동호회에 들어가보면 일반 텍스트, DJVU,  마이크로소프트 ebook, GIF/JPG 뷰어 등이 다양하게 등장해서 소개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반 텍스트 파일을 전용 포맷으로 변환하여 보거나, 웹 페이지를 전용 포맷으로 변환해 주는 툴을 써서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 PDF 파일을 그대로 보는 것은 좀 무리다. 600x800의 높은 해상도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170ppi의 세밀한 화소덕에 한페이지를 한화면에 나타내자면 너무나 글자가 작다. 이미 A4/Letter 크기의 레이아웃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PDF 문서들은 아쉽게도 리브리에와 궁합이 맞지 않았다.

최근에는 일본 국내 전용 버전외에도 미국 시장 타겟인 동일 사양의 제품이 eReader라는 제품명으로 선보였고, 같은 전자잉크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해상도가 768x1024로 한단계 높은 제품 일리아드가 전자잉크 기술의 원천특허를 가지고 있는 iRex Technologies, Inc. 에서 출시되었다.

7) iRex Digital Reader

일리아드를 살까말까 정말 오랜 시간 고민을 하던 중 나온, 일리아드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화면 해상도가 무려 1024x1280 (10.2") 이며 4레벨에서 16레벨 회색조로 색상지원도 늘어나서, 드디어 A4/Letter 크기의 PDF 문서를 변환없이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첫번째 제품이 되었다. 세가지 모델 가운데 터치스크린을 지원하는 것만 현재 나와 있는 상태다. 수많은 PDF 문서들이 드디어 컴퓨터 밖으로 나올수 있게 만들어 준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성능의 전자책 기기다. 널리 보급되기도 전에 제조사에서 SDK 공개를 서둘러서 이미 각종 미지원 포맷에 대한 지원도 잘 갖추어져 있다.

물론 완벽한 제품은 없다. 아니,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터치스크린을 지원하는데다 버튼에 난데없이 정전용량 방식을 채택한 탓에 이 둘이 잡아먹는 전력이 꽤 되어 전자잉크의 "거의 무한한 배터리 용량"이라는 탁월한 장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배터리는 일반 사용시 약 7~8 시간 정도 버틴다. 이해할수 없는 부분이다 (터치 스크린을 비활성화시켜 놓을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버튼만으로는 조작이 매우매우 불편해진다).

며칠전 아마존이 내놓은 킨들 DX 버전은 이보다 약간 화면 크기가 작고(9.2") 터치 스크린을 지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격은 거의 절반밖에 되지 않아서 만일 일반 포맷 문서에 대한 지원이 잘 된다면 대체기기로 고려해 볼만 할것 같다.

최후의 선택은 아마 한단계 발전한 전자잉크 기반의 "그 무엇"이 되지 않을까 한다. 전자잉크의 화면 리프레쉬 속도는 느린 편이라 종이책을 볼때 많이 하게 되는 페이지 후루룩 넘겨 보기(플리핑)는 아직 요원하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놀라우니 몇년 더 기다려 보면 컬러 지원에 빠른 디스플레이 속도까지 갖추어진 멋진 기기가 등장해서 기뻐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들인 돈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전자책을 써야겠다.

Monday, May 04, 2009

고딕소설

  조앤 해리스의 최근 소설들을 마저 읽으려는 계획을 바꿔서 대신 손댄 그의 데뷰작품 "Sleep, Pale Sister"를 다 읽고 덮은게 몇주전 월요일 새벽이었다. 회사일이 바빠서 연이어 읽을 틈을 못내 잠자리에서 몇 페이지씩 갉작이다, 휴일이 다 끝나가던 밤 마침 절정을 향해 오르던 소설의 내러티브의 힘에 몸을 맡겼다. 읽은지 한참이 지나니 잔 독후감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자신을 꺼내주러 올 모즈를 기다리며 춥고 캄캄한 지하의 묘지에서 엄습해오는 추위에 불안감에 공포의 극단까지 몰렸을 에피의 심정인데 어째 그것이 이상한 색과 퀘퀘한 냄새를 풍기며 공감각적으로 덤벼와서 꿈에 나올까 겁이 난다. 초콜릿, 오렌지 다섯 조각 등과 쓴 작가와 연결짓기 매우 힘든 음지의 요사스런 힘으로 축축히 젖어있는 고딕소설이다.

해리스가 서문에 이 소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짧게 적어 놓았다. 여기 옮겨 보면:

"죽은 자를 되살리려는 시도는 좀 특별한 종류의 사람이 아니면 원치 않는 일일 것이다. 죽은 '책'이라면 특히 더 주의를 요한다. 잃어 버린 보물 한점한점마다 부주의한 발굴자가 파헤쳐야 할 우유 병뚜껑은 수백개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괜히 오래 전에 쓴 책 다시 꺼내 들다간 감당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뜻으로 쓴 말 같음). 지난 십여년동안 Sleep, Pale Sister를 사라져 버린 시간의 유물 쯤으로 여기는데 익숙해져버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더웠던 1993년 여름 나는 딸 하나와 책 한권을 세상에 내보냈다. 하나느 삶을 이어갔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못했다. 내게 있어 경쟁은 없었다. 세상은 하루 아침에 바뀌어 버렸고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던 것이다. 갑자기 출판에 대한 욕구는 한때 그랬던 것처럼 그닥 절실히 다가오지 않았다. 2003년 무렵 그 책은 이미 절판된지 오래였다. 처음 출간뒤 후 책을 한번 들추어 보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그 책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어 없었다.

하지만 모두 그런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그 책을 읽은 사람이 있었다. 그중에 출판업계 사람들도 있었고 팬들도 있었다. 또 단순히, 어떻게 초콜릿의 저자가 영국 고딕 소설에서 프랑스 식탐의 세계로 도약했는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몰려드는 재출간에 대한 요청에 당황스러웠다. 아마존에 남아 있던 재고 수백부가 순식간에 동이 나버렸다. 출판사에는 책을 다시 찍어 달라는 편지들이 쇄도했다. 마침내 우리는 한번 더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아미 실제 해야 할만큼 많이는 아니지만 처음 원고를 약간 손을 보았는데, 곧 깨달은 사실이, 이 환자는 본격적인 수술을 받기엔 너무 연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은 실수 몇가지를 바로잡는데 그치기로 했다. 그러는 도중 스스로도 놀란 일이지만, 아직도 내가 이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을 아끼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책은 죽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잠들어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두번째 기회가 주어져서 기쁜 마음이다."


   이런 류의 음습함으로 무장한 내가 아는 작가는 몇 안 된다 (사실 무슨 장르를 꼽아봐도 아는 작가는 몇 안 될거다). 현대라면 우선 스티븐 킹이 떠오른다. 호러에서 메인스트림의 넓은 장르의 폭을 오가는 그이지만, 인간의 근원적 공포심을 선혈과 뱀파이어가 아닌 심리묘사로만으로 탁월하게 자극해서 읽는 이를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공포의 세계로 이끄는 일련의 소설들이 아마 자랑할만한 대표작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Four Past Midnight" 등은 한밤에 읽지 않는게 좋았다. 부스럭거리는 주위의 모든 것들을 섬뜩한 괴생명체로 보이게 만드는 (문자그대로) 소름끼치는 소설들이다.

  하지만 정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소설은 "Dead Zone", "Green Mile" 등 초현실적 배경과 휴머니즘이 뒤섞인 이름 짓기 애매한 부류이고, 좀더 냉정히 말한다면 킹의 대표 소설 전반에 눅눅히 깔린 공포 호러의 소설적 유전자는 해리스의 데뷰 소설과는 약간 길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긴 해서 "고딕" 소설이란 꼬리표를 붙여 주기엔 조금 어색한 감이 없지 않다. 역시 "고딕"하면 내 맘속에 마치 돔문을 열고 출격하는 마징가 제트처럼 서서히 솟아오르는 작가는 따로 있다. 그 사람의 소설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적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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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잘 기억 안나는 오래된 동서문화사 World Great Books 전집에 몇몇 이가 빠진 번호가 있다는 걸 알아챈건 아주 뒤늦은 대학 무렵이었다. 아마도 아버지께서 전집으로 들여놓으신 것같은 이 책을 난 거의 보지 않았으니 군데군데 그 빈곳은 십중팔구 이따금 우리집을 드나들었던 대학생시절 육촌형들 몇몇이 "잠시" 빌려간후 발길을 끊어서 생겼을 것이다.

  한창 헌책방에 바삐 다니던 때, 신촌, 외대, 경희대 근처의 헌책방을 드나들며 책을 찾던 중, 반가운 그 "빠진 이" 중 한권과 마주하게 되었다.

레베카. 뒤 모리에. 손소희 역.   World's great books 72

  내게 영화에 어느 정도 관심과 지식이 있었다면 그 책에 얽힌 사정을 조금이라도 알았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그러지 못했고, 표지의 모딜리아니 그림과 어딘가 낭만적 울림이 있는 소설의 제목과 저자의 이름, 그리고 뒷커버에 실린 작가의 단정한 아름다움에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가 담긴 내가 미처 모르는 고전일 것이라는 어렴풋한 단정을 한 채 행복한 책사냥의 발길을 마무리했던 것 같다.  굳이 읽기 위해 산 책이 아니었던 터라 등하교길에 읽기 위해 책을 고르다 레베카를 떠올린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후였다. 지하철에서 책을 펴들고 있노라면 이따금 주위의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럴만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고색창연한 표지의 낡고 오래된 책이 풍기는 서권기가 있었을 것이다.

  "지난밤, 나는 또 만더레이에 간 꿈을 꾸었다." 아름다운 첫 문장이었다. 가슴저린 낭만적이고 고전적인 러브스토리가 펼쳐지리라 기대하고 시작했던 독서에 대한 기대감은 그러나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조각나듯 부서져 버렸고, 나는 기괴하고 축축하고 한기 감도는 중세 영국 어느 지방의 대저택 맨더레이 속으로 붙잡히듯 빨려 들어가, 가슴 졸이며 주위의 모든 소음을 망각한채 소설에 몰두했다. 귀에 들어오지 않던 소음 가운데는 다음역 안내 방송도 있어서 나는 두어번 내릴 정거장을 지나쳐 버리곤 했다. 색바랜 책갈피 사이에 빼곡히 적힌 활자들이 20세기 밝디 밝은 도시 지하철 조명 아래 서있던 내 머릿속에 우뚝하게 세워 놓던, 새벽의 푸른 기운 감도는 이국적 저택의 모습과, 그것이 전해 주던 분위기는 지금도 기묘하게 사실적이다.

  아쉬움 가득 섞인 회고로 시작하여, 중세풍의 러브스토리처럼 흘러가던 이야기는 이윽고 미스터리 스릴러와 같은 긴박함을 띤 채 급한 물살을 타듯 흐르다 급기야 초현실적인 파국으로 치닫는다. 표지로도 제목으로도 연상할수 없었던 내용에 무수한 궁금증을 품게 된 후에야 비로서 조사를 통해 내가 대프니 뒤 모리에라는 고딕풍 소설의 대가의 대표작을 읽었음을 깨달았다. 그 뒤로 내게 고딕 소설이란 '레베카'를 읽으며 느낀 인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성과 합리에 배치되는 중세의 미혹스러움과 불가사의함이 제재와 상황 가득 자욱히 깃들어 있는 문학이 바로 고딕 소설 장르라고 말이다.

  그 뒤로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짬을 내어 들른 헌책방에서, 서가를 브라우징 하기전 저자명 D 코너에 먼저 고개를 들이 밀고서 눈에 뜨이는 대로 뒤모리에의 소설들을 한 두권씩 사모으는 쇼핑을 하곤 했다. 호주 배낭 여행중 들른 브리즈번의 한 책방에서, 네덜란드의 소도시 즈볼레의 헌책방에서, 뉴욕의 스트랜드에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은채 얌전히 색이 바래 가던 뒤 모리에의 대표작들을 발견하고는 그 책들을 손에 든채 호텔로 돌아오던 일은 큰 즐거움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레베카'의 여러가지 에디션이 눈에 뜨일 때 가장 반가왔던 것 같다. 이후에 받게될 찬사와 명성을 전혀 예상치 못한 듯 다소곳이 낡은 1938년판 (출판된 바로 그해다), 신기하게도 시간의 거친 공격을 받고서도 더스트 재킷까지 온전히 남은 52년판, 레베카를 다른 추리소설과 함께 실은 두툼한 걸작선, 그리고 레베카의 두문자 R이 아름답게 도안된 발간 55주년 기념판 등, 내 편벽이겠지만 책 역시 다른 물건과 마찬가지로 그 실용적인 목적에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매력이 덧대어져 있을때 비로소 온전한 가치를 지니는게 아닐까. 단순히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간직하고 싶은 욕심에 사모은 뒤모리에의 책들. 그동안 꾸역꾸역 사들이고 숱한 이사통에도 꿋꿋이 끌고 다녔던 온갖 책들을 숱하게 알라딘 중고 장터를 통해 내다 팔고 있지만, 구입과 독서의 즐거움이 한껏 어려 있는 뒤모리에의 책들을 내놓은 일은 없을 것이다.

  마음 여유로운 저녁을 며칠간 확보할수 있을 때 읽으려고 뒤모리에의 소설들을 꾹 참고 아껴두었다가 읽은 첫 장편은 'Jamaica Inn'이었다. 뒤 모리에가 처음으로 시도한 고딕 스릴러라 할수 있는 본작에서 이미 레베카와의 유사성이 보인다. 물리적으로 고립된 (여)주인공이 무지와 사악, 신비스럽고 초현실적인 힘, 공포에 시달리며, 구원의 손길처럼 보이던 것도 모습만 달리한 악의 편임을 알고 절망하다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의 결말로 마무리되는 이야기의 구조다. 선과 악으로 딱히 나누기에도 미흡하며, 결국 주인공이 해피엔딩을 맞았다고 볼수도 없는 설정들이 소설의 진행과 결말을 모두 무채색의 암담함으로 물들여 놓는다.

  겹치는 것이 꽤 많지만 개의치 않고 구입했던 여러 단편집들은 짧은 시간에 작가의 고딕적 소설세계를 탐험할수 있는 아주 좋은 대상이다. 최근 그중 몇편이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다. '파란 렌즈(Blue Lens)' '돌아보지마(Don't Look Now)', 그리고 레베카와 더불어 힛치콕 감독의 솜씨로 영화화된 '새' 등, 현대적 배경과 비현실적 제재가 뒤엉켜 미묘한 공포를 자아내는 멋진 작품들로 가득하다.

  남아 있는 뒤모리에의 사진들과 그의 바이오그래피를 훑어 보노라면 도대체 어떻게, 이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양지에서 커다란 삶의 고민없이 살다 떠나간 듯한 이 가냘프게 보이는 여인이, 그로테스크함이 출렁이는 소설을 쓸 수 있었는지 의아함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뛰어난 소설적 상상력의 원천은 어디일까 한없이 궁금해진다.

  한동안 열심히 찾아 읽다 그만 둔 캐롤 굿먼의 네번째 소설의 제목은 The Ghost Orchard다. 해리스의 경우와는 반대로, 주류에 가까운 미스터리물을 다루다 고딕소설로 잠시 외도하였다고 한다. 접었던 호기심을 이 기회에 되살려 봐야겠다. 이것과 뒤모리에의 My Cousin Rachel 두권을 놓고 저울질해보며 한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를 기다릴 생각이다.

Monday, February 23, 2009

Spyra - Meditationen

지난주 회사에서 떠난 스키여행과 함께 했던 음반이다. 오가는 버스에서, 온몸을 노곤하게 가라앉히는 듯한 피곤함이 몰려오는 잠자리에서 이 스파이라의 음악을 들었다. "명상"이라는 타이틀과 어울리는 분위기지만 내겐 명상의 도구로서가 아닌 적극적 감상의 대상으로서 무척 매력적으로 들렸다.
 
스파이라를 이끌고 있는 뮤지션 울프램 스파이라는 어떤 사람일까? 위키피디아에서는 그를 앰비언트, 레트로 베를린 스쿨의 추종자로 명시해 놓았지만, 사실 실험음악의 극단에 서 있지 않는한 베를린 스쿨의 그림자에서 비켜 서있는 현대 전자음악 뮤지션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진지하게 묻는다면, 아마도 스파이라 음악은 앰비언트적이라는 표현이 더 묘사에 적합하되 내놓는 음반에 따라 색을 미묘하게 바꾸어 장르적 종속을 거부하는 카멜레온스러운 모양이 그 특징이라고 해야 할것 같다. 제일 먼저 들었던 "Orphaned Waves(2006)"이 퓨전 재즈적 색채까지 살짝 띠는 밝고 경쾌하며 리듬감과 비트도 강한 음악이었던데 반해 클라우스 슐체 전성기의 대표작 "X"를 연상케 하는 "Meditationen"은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기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한동안 슐체의 음반에  좀처럼 손이 안 갔던 참에 마치 그 더블 씨디의 마치 숨겨진 세번째 씨디를 발견해 듣는 것 같은, 긴 호흡의, 비감이 어린 낭만적인 선율로 가득하다. 서늘하고 이따금 불안감마저 감도는 프레이즈를 이리저리 내밀고 천천히 조금씩 모습을 바꾸며 진행하는 굵은 주제의 변주는 같은 독일인이라서 가능하고 또 닮아 있는 것일까. 전자음악의 커다란 산맥을 베를린/뒤셀도르프 스쿨로 나눌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라틴/게르만 뮤직으로 나누는 것도 의미있어 보인다. 반겔리스, 자르 등의 음악에서 엿볼수 있는 정열의 아름다움과 대조를 이루는 냉정의 아름다움은 탠저린 드림, 슐체에서 싹터서 지금도 독일계 뮤지션들의 음악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On his album Meditationen (71'03"), Spyra embraces the essential concepts of Spacemusic to create lengthy realizations which possess a transportative quality. Listening to this music, one feels as though they are moving, traveling outward into the cosmos. But the only actual movement we are experiencing is inward, deeper into dreams, memory and images from the psyche.
This sensation is accomplished through the use of texture as the primary compositional element.

Meditationen contains three tracks with "Mentalized" (28'12") opening the album. This sprawling piece references the more classic and beloved works of Klaus Schulze. The gradual arc of the piece begins with street sounds intermingling with comforting breaths of synthesizer tones. The sound fills out, thickened by additional layers of cosmic electronic pads and slowly shifting harmony.

"Composure" (28'14") begins with the serious sound of reverberant piano notes. This brief section turns out to be just a prelude to a truly fascinating journey into dark and rolling timbral metamorphosis.
The album concludes with "Future of the Past II" (14"40"), a reworking of Spyra's cosmic/chillout hybrid of syncopated sequencer patterns and intelligent percussion accents. Although, due to its focused energy, this track stands apart from the other two pieces on the album, it is in this work that we hear Spyra's unique contribution to the genre; bringing the ideas of classic 1970's spacemusic into the present tense.

Wouter Bessels / SonicImmersion.org  

Sunday, February 15, 2009

2004년에 읽은 재미있는 소설들

(매년말 이런 글을 써둔것 같은데 다 어디로 도망갔는지... 기록을 위해 2004년 글을 옮겨 놓습니다)

올해는 재미있는 책들을 참 많이 봤다. 12월 한달은 별다른 책이 안나와도 용서가 될것 같다. '오렌지 다섯조각'을 보고 솔깃한 내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듯 인터넷엔 조안 해리스의 '초콜렛' 전문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 좋은 세상이다.... 스캔해서 교정까지 꼼꼼이 본 그 사람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독서를 마치며 올해 나를 기쁘게 만들어준 소설들의 촌평/감상을 짤막히 정리해 보기로 했다.
 
초콜렛 - 조안 해리스
 
방금 다 읽은터라 감상이 생생하다. '오렌지 다섯 조각'의 수준을 가볍게 넘어서는 정말 멋진 소설이다. 독서 내내 진한 핫초콜렛의 향이 방안을 휘감는것 같았다. 특히 소설의 대단원에서 벌어지는 아르망드 할머니의 생일파티와 아이러니컬하게 해소되는 갈등의 장면에서 흐드러지게 묘사되는 맛과 향의 한바탕 잔치란!
 
올해 읽었던 다빈치 코드의 영향일까, 주인공 비안느의 모습에서 나는 다빈치 코드를 읽고 어렴풋이 동경하게 되었던 여성성, 크리스트교에 의해 억압받기전 이교와 잡종의 문화, 사고, 전례의식을 자유로이 지닌채 생생한 에너지로 가득했던 삶을 살아간 여성의 살아있는 예를 본것 같았다.   마법의 양탄자 타기, 룬 매직, 집시의 노래, 알리바바의 이야기,  성모의 재림, 천체 여행, 포도주 찌꺼기점, 부처의 설법, 모르도르로 향하는 프로도의 여행, 도로시와 토토, 부활절의 토끼, 벽장속의 괴물, 타로 카드점... 오랫동안  많은 곳을 떠돌아 다녔던 비안느를 매혹시켰던 것들이다.  랑스끄네 마을의 신부 레이노가 비안느를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크리스트교가 적대시했던 여성의 속성 가운데 하나인  '마녀'의 이미지를 비안느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이 소설은 한 여인의 색다른 모험담일 뿐만 아니라, 구태한 기독신앙과, 더 인간의 모습에 가까운 이단간의 전면전을 다룬 소설이다!

각색한 영화에는 비안느 역을   줄리에뜨 비노슈가 맡았다는데 순하고 가냘픈 인상의 비노슈가 어떻게 그 역을 소화했을지 궁금해진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박민규
 
작년 매우 편협한 독서생활로 인해 많이 뒤로 미루어놓았던 소설들 가운데, 안보고 지나쳤던 시간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가장 읽는 것이 즐거웠던 소설이다. 대체 보다가 이렇게 많이 웃은 소설이 또 있을까 싶다. 가벼운 희극의 모양을 띠면서 시작하는 작가의 재담은 이윽고 양적으로 질적으로 폭발한다. 슈퍼스타즈의 연전연패로 인해 처절함으로까지 치닫는 가운데에도 더욱 기세좋게 희화화의 극단으로 내몰리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 마치 난처한 지경에 빠진 희극속의 채플린을 보듯 나는 웃고 또 웃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주인공처럼 들뜬 가슴으로 원년 프로야구의 개막을 기다렸던 야구소년이었고, 응원하는 팀의 일승 일패에 그날 밥맛과 기운이 왔다갔다 했던 철부지 야구팬(리틀 오비베어즈 회원이었다)이었고, 나이를 먹으며 서서히 야구를 잊어간 성인이었고, 구조조정의 거대한 경제적 살육의 현장 한가운데 서있었던 힘없는 한국인이었다. 그러나 슈퍼스타즈의 야구를 통해 느린 삶을 선택하는, 프로의 각박한 현실에서 놓여나는 지혜를 터득한 주인공과 달리, 나는 여전히 시도때도 없이 나를 들볶는 현실과 밀고 당기며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 소설을 읽고 나서 '나도 다 때려치고 싶다'는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몸을 떨었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올까. 다 털어버리고서 삼박사일 잠을 자고 일어나면 옛 친구가 통닭을 사들고 찾아와 다른 삶을 살아보자고 속삭이는 마법이 풀린 세계를 꿈꾼다.
 
이 소설에 문학상을 안겨줄줄 안 심사위원들의 결단(?)에 경의를 표하고 싶은 심정이다. 나중에 들은 것이지만 소설의 모티브와 일부 문장이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고 한다. 작가의 의도와 처지를 이해하고 넘어가고 싶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 심윤경
 
난 서울이 고향인 사람이 부럽다. 정확히 말하면 고향이라고 여길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철들무렵부터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을 전전한 나는 다방구와 얼음땡을 하며 놀던 아파트앞 놀이터와 주차장을 겸한 아스팔트 공터에  고향의 추억을  힘겹게 얹어 놓고 산다. 그 어색한 고향의 풍경은 복잡한 획수의 한자어이면서도 가슴 뭉클한 어감과 온기를 지닌 이 힘있는 단어를 삭막한 코올타르와 우중충한 모래 빛으로 바래게 만든다.
 
지금 내가 사는 곳도 국민학교를 다녔을때 학교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길의 모양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지만 난 오히려 몇년에 한번 내려가 보는 할아버지의 고향 안동 촌구석이 더 내 고향이었으면, 그런 생각을 한다. 고종석씨가 소설에서 이따금 되살리는 마포, 심윤경씨가 이 소설에서 아름답게 그려낸 인왕산 자락의 산동네가 내 고향이었다면 비록 개발, 재단장, 구역 개편 등의 근대화에 밀려 그 온전한 모습을 잃었다 해도 서울이 더 포근하게 느껴졌을것 같다.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이야기가 아무리 고달프다 해도 고향의 온기를 머금고 있음으로 해서 아름답게 그려지는 것이 아닐까.
 
70년대말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는 어른들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주인공의 마음은 마치 어린 횃불처럼 순수해서, 그에 비쳐 나오는 별난 할머니와 요리 잘하는 어머니, 가장의 부담에 힘겨운 아버지, 짝사랑하는 선생님과 존경스런 옆집 삼촌의 모습에 나는 시도때도 없이 웃음을 터뜨리며 행복해 했다. 할머니의 욕설, 천재 여동생의 재롱, 아랫께 시장의 풍경, 정의파 주미 삼촌의 활약,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소설속에서 반짝거리며 빛난다. 이 소설이 비극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는게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었다. 작가의 실제 경험 중 얼마나 이 소설에 녹아 들어가 있을까. 어릴적 겪은 일들이라면 그의 추억이, 소설속의 허구라면 그의 상상력이 부럽기 한이 없다.
 
이 책이 한겨레문학상을 받은지 벌써 2년이 지났고, 촉망받는 신예작가였던 심윤경씨는 별다른 징크스도 없이 다시 훌륭한 두번째 소설 '달의 제단'을 내놓았다. 그 책의 감상은 나중에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세번째 소설을 기다리고 있다.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올해 '날 웃긴 소설 제 3탄'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 천연덕스럽게 네루다의 시와 메타포를 읊으며 베아트리스를 꼬시는 마리오 히메네스 곤잘레스의 이야기는 문학이 삶에 해학과 활력, 희망을 안겨 줄수 있다는 증거다. 마리오의 유혹에 넘어가 후끈 달아오른 딸에게 냅다 네루다의 시로 역공을 퍼붓는 로사 부인은 문학이 삶의 주변이 아니라 한가운데 놓일 수 있다는 증거다. 유머는 고난함속에서 오히려 활짝 꽃피어 나는걸까, 나라의 운명이 폭풍속의 배처럼 요동치는 현실을 보면 고달프기 이를데 없을 칠레 작은 섬마을 사람들은 네루다의 시와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고 끊임없는 유머를 자아내며 밝은 내일을 머릿속에 그린다.
 
소설을 덮고 나서 미루어 두었던 영화를 보았다. 아마 먼저 보았으면 나름대로 감명 깊었을 이 영화는 소설의 눈부신 활기에 사로잡힌 내게, 미스캐스팅과 소설의 재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대사로 인해 그만 김빠진 탄산수같았다. 주인공 역은 약간 덜 떨어졌으면서도 젊은 혈기를 주체못하고 시를 사랑하는 마리오의 인상과는 거리가 멀었고(실제로 몸이 아팠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주인공도 마찬가지로 덜 떨어졌으면서도 젊은 혈기를 주체못한채 사고를 치는 베아트리스와는 달리 그저 요염한 라티나일 뿐이었다. 원래 영화가 원작을 능가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스카르메타가 이슬라 네그라의 성당 신부와 읍장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면 아마도 과레스끼를 능가하는 멋진 해학과 인간미로 가득한 작품이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파이 이야기 - 얀 마텔
 
문학상 수상작은 예외도 있지만 보통 하품을 참으며 읽어야 하는게 관례라고 해도 무방할, 문학적 성취만 돋보이는 소설이 대부분이었는데, 부커상은 앳우드의 '눈먼 암살자'때부터 심사 기준이 바뀌었는지 이상하게 재미있는 것들에게 상을 주기 시작했다. 파이 이야기는 그런 변화(정말로 그런 변화가 있었던 것이라면)의 혜택을 입은 보기 드문 베스트셀러이자 수상의 복도 누린 걸작이다. 나는 문학적 성취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므로 마치 노인과 바다를 연상케 한다는 어느 비평가의 말로 '문학적 성취'의 정도를 대충 가늠하기로 했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호랑이와 여행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과연 어떻게 장편의 분량을 채웠을까 의아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긴장감과 재미를 유지하며 인도에서 캐나다로 향하는 기나긴 여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소재의 특이함이 돋보이는 소설이라는 점 이외에도, 주인공이 여행이 끝난뒤 털어놓는 반전에 가까운 고백으로 인해 이 호랑이와의 여행을 일종의 은유로 받아 들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독자에게 남겨놓은 해석의 여지가 독후감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든다.
 
다빈치코드 - 댄 브라운
 
놀라운 페이지 터너로 결말이 궁금해 다음날 출근할 걱정도 잊은채 몰두하여 보았다. 독서중 호기심을 누르지 못해 인터넷을 뒤져 다빈치의 그림을 다시 들여다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 사람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크리스채니티에 그닥 호감을 지니지 못하는 나는 소설이 통렬히 공격하는 바티칸과 기독교의 위선의 장면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읽다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루고 있는 소재와 관련된 많은 독서욕을 불러 일으키는 좋은 소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과 인명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의 유사성이 있다해도 우연의 일치다' 하는 문구를 서두에 적어놓은 소설은 많이 보았으나  '이 소설에 나오는 단체와 사건은 모두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류의 뻔뻔하고 선정적인 말을 적어 놓은 소설은 처음 봤다 : )  
 
한편으로 다빈치 코드는 베스트셀러가 지니는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이 어떠하여야 하는가를 잘 보여준 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메가톤급 베스트셀러였던 마이클 크라이튼의 '쥬라기 공원'과 그 점에서 대비되는 면이 있다. 이 두 소설은, 대중문학이 전세계적으로 수천만명이 읽는 베스트셀러가 되면 재미와 소설적 완성도를 떠나 전언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크라이튼은 소설적 재미와 더불어 고도로 발달한 유전공학과 컴퓨터 사이언스가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인 미래의 모습을 탁월하게 그려내서  과학만능주의에 젖은 이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댄 브라운은 반면에 허구와 사실의 구분을 작가 자신이 나서서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인터뷰에서도 그는 계속 책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종교라는 민감한 주제에 다가서는 사람들을 오도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어쩌면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한 노르웨이 밴드가 인터뷰에서, 아름다왔던 북유럽의 고대 전설, 신앙, 문화가 크리스트교의 전파로 인해 말살되어 버렸다며 분노에 찬 목소리를 높이던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나중에 그 밴드의 기타리스트는 언행일치를 위해 교회에 불을 지르다가 붙잡혀 결국 감옥에 갔다. 그 사람이 이 책을 읽었다면 거봐 내가 맞아 하며 출소후 다시 방화를 일삼지 않을까 싶다.
 
속죄 - 이언 매큐언
 
책을 읽은 후 내 머릿속엔 너무나 많은 생각이 떠올라 독후감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어지러움'이다. 예상치 못한 충격적 반전으로 맺어진 결말이, 조용히 독서를 마무리할 준비에 여념이 없던 내 머릿속에 온방향으로 파문을 일으키며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런 책은 감상을 길게 쓰기 어렵다. 그저 어지러울 뿐이다. 심사위원들도 그랬나 보다. 큼직한 상 하나 받을만 하다.
 
그것은 아마도 '무구한 젊은 시절에 저지른 과오'라는 매력적인 소재에 정면으로 맞부딛치며 독자들에게 힘겨운 윤리적 선택의 순간을 강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에서처럼 매큐언은, 과오에 대한 어떤 합당한 변명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어떠한 '속죄'의 모양으로,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라도 그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같다. 매큐언의 단연 최대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바람의 그림자 -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나는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 사랑이야기가 너무 고통스러운 것은 견디기 힘들다. 예를 들어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느지막히 대학생때 보았을때 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이 아름답다기 보다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이하게 여겨져 왜 이게 청소년들이 읽는 고전문학선에 들어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 어렸을때 읽었으면 정신적 성숙이 좀 더뎠던 내게 감당못할 충격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스페인에서 작년 내내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올라 있었다는 '바람의 그림자' 역시 주인공 젊은 시절의 폭풍같이 휘몰아치는 사랑이야기가 너무 고통스러워 읽으며 '폭풍의 언덕'을 도중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를 연상케 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화자이자 주인공인 소년이, 우연히 발견한 한 무명 소설가 줄리안 까락스의 소설들에 매료되어 그의 삶에 얽힌 비밀을 추적하다 수십년이 흐른 현재 자신과 신비하게 얽혀있는 인연의 가닥을 발견해 나가는 놀라울 만큼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바람의 그림자'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가슴아픈 러브스토리이지만, 오랜 책들에 대한 경외, 인연과 운명에 대한 깊은 성찰 등이 잘 얽혀 있어 재미가 더하다. 그 덕에 단선으로 흘렀으면 고통스런 기억만 남았을 소설의 인상이 무척 풍요롭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 - 정미경
 
난 요즘 TV 드라마들이, 귀에 익은 구절이나 영화의 제목을 도용해다 붙여서 친근감과 그에 이은 시청률의 상승을 유도하는 행위에 심한 거부감을 품고 있다(애정의 조건, 귀여운 여인, 폭풍속으로. 네멋대로 해라.  다 뭐하는 짓이냐). 요즘 일부 소설책들 제목에도 그런 이상한 경향이 보여 못마땅하다. 정미경씨의 소설집을 보았을때도 표절에 가까운(소설속에서 경위를 이야기 하고 있으니 무단이라고는 볼수 없겠지만) 제목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살 생각없이 서점에서 휙휙 넘기며 들추어보던 이 책의 몇몇 구절에 눈길이 끌리더니 이윽고 내가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가슴떨리는 문장을 쓰는 작가가 있다니. 스토리라인을 떠나서 언어의 조탁에 기울이는 정미경씨와 같은 작가들의 노력에 한국어가 더 세련되고 풍성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 내친김에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장편 '장밋빗 인생(역시 제목이...)'도 읽어 보았는데, 본 단편집이 더 뛰어나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책제목에 대한 모든게 용서된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성에 - 김형경
 
처음 김형경 작가가 쓴 소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를 재미있게 보았지만, 왠지 난 그 이름을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지냈다. 그러나 정말 오랜만에 연달아 본 김형경씨의 두 소설에 가슴 깊이 찌르듯이 와닿는 강렬한 독서 체험을 했다.
 
전체 분량의 약 50% 정도가 두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세진의 정신과 상담을 다루고 있는 파격의 '사랑을...'은, 아직 부담스런 비용과 너그럽지 않은 타인의 눈길에 신경을 쓸수 밖에 없는 정신치료를 간접적으로 받을 수 있는 실용적인 목적으로도 쓰일 수 있다. 삼십대 후반에 접어드는 독신 여성 세진의 성장 배경과 심리에 공감할 요소를 찾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올해 우연히 읽은 전 씨네 21 편집장 조선희씨의 소설 '열정과 불안' 역시 후반부의 절반 이상이 주인공의 정신과 상담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 올해 난 정말로 직접 상담을 받은 기분이다).
 
'성에' 역시 놀라운 흡인력으로, 삶에 찾아온 일탈의 순간에 겪는 죽음, 사랑, 질투에 관한 놀라운 체험담을 펼쳐 보이며 나를 사로잡았다. 성에를 읽고 나서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이 떠올랐다.  난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일견 평화롭고 튼튼해 보이는 사람들의 일상,  그들간에 맺어진 관계가 실은 얼마나 위태로우며 또 얼마나 수많은 붕괴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영화와 소설은 비교할만한 유사성도 대립점도 없지만 어쩐지 나는 다시 한번 '일상에 내재된 불안'이라는 주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없었다. 
 
그 외에도 성에가 무척 맘에 드는 것은 제법 장편의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상하로 쪼개지지 않은 한권의 통통하고 예쁜 책으로 출판되었다는 것이다. "쪼개진 책은 안 사본다" 도서 구입 수칙을  아직 지키고 있는 내겐 책이  '내것'이 되어 보관할수 있다는 것 역시 큰 기쁨이다.
 
별들의 들판 - 공지영
 
난 공지영씨의 소설이 좋다. 김XX 교수가 '후일담 문학'의 실패를 공공연히 이야기할때도 난 개의치 않는다.      공지영씨를 방현석씨나 정도상씨 등과 비교하는 것부터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소설의 장르가 다르고, 접근하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세기가 바뀌고 추구하는 이념이 더이상 화두가 되지 않는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치유해야할 과거의 상처가 남아있다는 것을 공지영씨는 이 소설에서 내게 일깨워주었다. 그동안 절필하다시피 살았다지만 하필이면 그가 몸 담고 있던 공간이 베를린이었다는 것은 아마도 공지영씨에게 작가로서 지워진 일종의 운명같다.
 
공지영씨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부모, 자식, 벗과 사랑하는사람과  주고 받는 작은 정으로 힘을 얻으며 살아가는 가냘픈 존재들인데, 어쩌다 이데올로기와 같은 거대한 폭풍을 만나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야했는지를, 또 어떻게 살아 남으려 발버둥쳤는지를 비관도 낙관도 없이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그대로 그려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 아닐까. 새로운 시작은 또 하나의 거대한 담론과 이론이 아닌 사람들의 용서, 화해로 이루어 질수 있다는 것을 그의 소설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되새기게 된다. 동명의 중편은 더할 나위없는 감동을 남긴다.
 
그외....



천운영씨의 두 소설집 '바늘'과 '명랑'을 올해 한꺼번에 보았다. 단순히 재미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읽는 내내 나는 마치 바늘 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분위기와 소재는 다르지만 전경린씨의 소설을 읽을때도 이런 느낌이 들었던것 같다. 그래도 다음 소설이 나오면 또 사보고 싶다. 단편이지만 하나하나가 뿜어내는 기가 보통 강한 것이 아니어서 부담스러웠다. 천운영씨가 장편을 쓰면 어떨까 궁금하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미술과 상상의 만남' 두번째  작품 '여인과 일각수'도 제법 좋았지만 첫 소설 '진주 귀걸이 소녀'만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대상의 친숙함의 정도가 떨어져서 그런것 아니었을까.
 

그닥 호감을 못샀던 책들이라면... 엠마 매클러플린의 '내니의 일기'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매력을 예상하고 독서를 시작했지만 결국 끝내지 못했다. 뭔가 존스의 일기처럼, 신랄한 비틀림을 받쳐줄 따스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한것 같았다. 니콜 키드먼의 팬이라 당연히 찾아서 본 영화
'휴먼 스테인'이 그런대로 괜찮았던것 같다가도 어딘가 조금 부족한 느낌을 지울수 없어 아쉬워하다 그게 필립 로스의 몇년전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원작을 읽어 봤는데... 원작 역시 어딘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돌의 집회'는 다빈치코드와 같은 강력 페이지 터너이긴 하지만 엄청나다 싶을 정도로 크게 벌여놓은 소설의 규모에 스토리가 허덕인다는 인상을 지울수 없었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그만 그 명성때문에 턱없이 높은 높은 기대를 품었다가 말아먹어서  아쉽기 짝이 없다. 보기보다, 하드한 SF의 긴장감을 놓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꽤 된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감상이므로 이견이 있으시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내년엔 또 어떤 훌륭한 소설들과 마주하게 될까. 기대된다.
 

Fatal Inversion - Barbara Vine

"다섯명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느 이상스러울만치 더운 한 여름날, 빅토리아 양식의 저택 와이비스 홀을 그들 코뮨(공동체)의 터전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전원을 배경으로 한 생활은 오래전 이미 황폐화되었고, 그 다섯 사람들도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한 뒤 각자의 길을 따라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그 약속도 와이비스 홀의 외딴 동물 묘지에서 묻혀져 있던 비밀이 모습을 드러낸 뒤 깨지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발견된 작은 아기와 한 여자의 뼈가 그 오래전 무더웠던 여름날의 끝자락에 연이어 일어났던 파괴적인 사건들을 들추어내게 된다. 하지만 정말 그곳에서는 누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누가 그 일을? 또 그 이유는? 미스테리의 거장 바바라 바인이 엮어내는 긴장과 기만의 그물이 자유와 방만, 환영과 복수, 자극과 정열의 위태로운 사잇길로 독자를 이끌며 인간 심리의 깊은 어두운 곳을 향해 나아간다."

에드가 수상작 선집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루스 렌델 여사에게 에드가 상을 안겨준 단편  "드리워진 커튼(Fallen Curtain)"은, 섬짓하다거나 아이러니컬하다거나 하지 않다. 조용한 독백같던 그 소설보다는 한길사 미스테리 선집에 실렸던 "희생자로 태어나다(Born Victim)"나 여성작가 미스테리 모음에 실린 "패트리셔에게 보내는 선물"이 훨씬 더 잔인하고 냉혹한 렌델 여사의 정통적인 소설의 이미지에 가깝고, 수상작에 선정되었던 단편집 "Fallen Curtain"에서도 마지막 순서로 실린 "흩어져야 산다(Divided We Stand)"가, 굳이 비교하자면, 온몸을 차갑게 훑고 내려가는 전율을 뿜어내는데 있어서는 "Fallen Curtain"을 수십배 압도한다.

그리고 여사에게 작지 않은 기쁨을 안겨주었을 여러 수상소식도, 렌델이라는 이름하에 쓰여진 냉혈적인 미스테리물이 아닌 바인(Vine) 명의로 발표한 미스테리 스릴러의 영역을 조금 비켜나 있는 듯한 몇안되는 소설에 더 많이 주어졌다. 렌델로서는 그 점이 좀 섭섭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마치 많은 블록버스터를 만들고서도 컬러 퍼플을 찍은 후에야 비로소 수상과 인연이 있었던 스필버그가 느꼈을 약간의 서글픔...과도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좋은쪽으로 생각해보기로 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반전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는 많아도 여러갈래로 종잡을수 없이 분열되어 가지를 치며, 또 다른 이들의 마음과 얽혀 시종 긴장감을 늦출수 없게 만드는 정신분열증적인 미스테리 스토리를 아름다운 문체로 표현해낼 수 있는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기에 그런 재능을 숨기듯 지니고 있는 렌델의 작품이 어쩌다 그런 모습을 한채 세상에 나올때 기쁜 '수상작'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는 것이라고.

정태원씨가 "치명적 반전(Fatal Inversion)"이라고 제목만 번역한 적이 있는 이 소설은 제목만 놓고 보자면 추리소설 매니아들의 호기심을 한없이 자극하고 끌어당길 것이다. 그러나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것은 극적인 결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과거의 한 시점을 향해 그 이전과 현재의 이야기들이 양쪽에서 수렴하듯이 다가가는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어 대단원에 찾아올 사건이 무엇일지 짐작하기 어렵지도 않다. '치명적 반전'이란 주인공들이 코뮨 생활을 결심하고 결국 파탄에 이르게 되는 몇달간의 삶을 지속한 별장 와이비스 홀(Wyvis Hall)의 별칭에서 연유한 것이다. 에칼페이모스(Ecalpemos).  별장에 붙여진 이 이국적인 이름은 마치 그들을 찾아올 비극을 예감하여 만들어진 것 같다고 주인공인 루퍼스와 아담은 후일 생각한다.

소설을 보면서 나는 내내, 약 5년 뒤에 쓰여진 도나 타트의 걸작 "비밀의 계절(Secret History)"의 틀과 치명적 반전이 어딘가 유사한 구석을 지니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외부와의 교류를 중단하다시피 한 폐쇄적인 그룹의 사람들이 내부적으로 지니고 있는 붕괴의 요소를 원하지 않게 키워나가는 광경이 그렇달까. 렌델이 타트의 소설에 극찬을 아끼지 않은 것은 치명적 반전이 매우 조심스럽고 미묘하게만 표현하였던 사건들을 좀더 능숙하고 화려하게,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더 뚜렷이 살려 가면서 완성한데 대한 찬사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비밀의 계절에서는 리차드의 1인칭 시점을 통해 클래스메이트들의 모습을 차분히 보아나가지만 치명적 반전은 그와 다르게 여러 화자의 입을 통해 한겹한겹 꺼풀을 벗겨내듯 에칼페이모스 최후의 날을 향해 조금씩 다가간다.

치명적 반전은 사람과 사건에 대한 선악의 구별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냉정한 묘사만으로 하나하나의 말과 행동을 그려내고 있다. 살아남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나눠지는 기준도 모호하다. 그리고 결국 죄의 댓가를 치르는 이와 그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바인에게 묻는다면 아마도 여사는, 악한 의도가 없는 이들이 자의와 무관하게 저지르게 되는 죄악은 그 죄악이 행해진 당시나 이후 그들이 받는 정신적 고통만으로도 충분히 그 댓가를 치르게 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법적인, 물리적인 고통은 상처받고 괴로움에 시달렸던 영혼에게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고통은 마음먹는다고 해서 없앨수도, 타인에게 떠넘길수도 없는 끝을 모르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들도 자신을 구속하는 사회적 제재가 더이상 없을 것임을 알면서도 마음에 드리워진 어둠의 그늘을 걷어내버리지 못한다.

바바라 바인은 마지막 한 챕터를, 다섯명 가운데 유일하게 그 후일담이 언급되지 않아 시종 궁금함을 참지 못하게 하던 인물을 위해 남겨두어서, 마치 인부들이 떠난후 해가 지는 공사장의 바람처럼 쓸쓸하고 황량한 소설의 마무리를 긴 여운과 함께 인상깊게 처리한다.

풍부한 상상력과 논리, 추리력을 동원하여 독자들을 몰입시키는 추리소설과는 거리가 먼, 비밀의 계절과 함께 과거의 한 시절, 젊음과 겁없음, 무법의 광기가 여과없이 표출될수 있었던 청년기의 아픈 과거를 섬세히 그려낸, 어떤 면에서는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을 떠올리게도 하는 소설이다. 독이든 초콜렛이나 트렌트 최후의 사건과 같은 탁월한 Who-dunnit류의 추리소설과, 치명적반전과 같은 추리소설이 내게 같은 장르의 문학으로 굳이 인식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양쪽 모두 즐겁게 향유할수 있음이 기쁘다. 그와 함께 폭넓은 장르의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 영국추리문학계의 오랜 역사와 두터운 기반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본작은 1987년 영국 미스테리작가 협회 최고상인 황금 단검(Gold Dagger)상을 수상하였다.

The Yiddish Policemen's Union - Michael Chabon

유태인에 대한 내 모든 관심은 제프리 아처의 단편 "크리스티나 로젠탈"에서 시작되었다. 아처의 반짝이는 단편 소설들 가운데 이토록 긴 여운과 감동을 남기는 것은 없었다. "십대 문학 소년이냐" "지나친 신파조 취향이 아니냐" 등의 핀잔을 다 들어 넘길 수 있다. 매우 더딘 정신적 성장과 더불어 정석 & 종합영어를 벗삼아 십대의 후반을 정서적으로 바짝 메마르게 보낸 내게 대학 시절은 교투에서 로맨스 소설까지 길고 길게 펼쳐진 물리적, 화학적(혹은 정신적) 경험의 실전 공간이었다. 내 마음속 살짝 누르면 움푹 들어가 자국을 남기고 빨리 제모양을 찾지 못하는 보들보들한 부분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 모양은 다 그 시절 읽었던 이런저런 소설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에릭 시걸, 제프리 아처, 공지영, 박완서. 

그 가운데 우리나라 작가들이 "소수"로서 내세웠던 주체로 대다수를 차지했던 것이 여성이었다면, 외국의 작가들은 우연찮게도 "유태인"을 다루고 있었다. 헐리우드와 미국 정치 경제를 보이지 않는 커튼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거대한 세력으로서의 유태인이 아니라, 성경의 몇구절에 기대어 팔레스타인 민족을 몰아낸뒤 가자지구에 융단 폭격을 퍼붓고 강건너 구경하듯 즐기는 유태인이 아니라, 수천년을 유랑하며, 이상한 풍습을 지닌 소수자로서 핍박받고 억울함을 호소할데도 없이 오시비엥침의 가스실에서 죄없이 숨을 거두어야 했던 힘없는 민족의 일원으로서 유태인말이다. 내 눈에 비친 유태인들은 선민으로서의 자부심이 아닌 원죄의식에 시달리며 고통받는 것처럼 보였다. 이 느낌이 원폭 피해자로서 일본인을 바라보는 것과 같이 부당하게 따뜻한 시선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안네 프랑크에게, 크리스티나 로젠탈을 평생 진심으로 사랑했던 벤자민이라는 개인에게 어떻게 같은 잣대를 들이댈수 있겠는가. 복거일의 말처럼 '궁극적 소수로서의 개인'에게 닥치는 아픔을. 

유태인으로서의 원죄의식을 좀더 밀착해서 바라본, 마사 쿨리가 쓴 "The Archivist" 역시 읽는 내내 가슴먹먹한 저릿함을 안겨 주는 소설이었다. 단지 여자로, 동성애자로, 검은 피부로 태어 났다는 이유로 까닭없는 차별에 시달리며 고통받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유태인들의 삶은 신산했다. 세기가 바뀌고 인류가 성숙하여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잊거나 기꺼이 벗어날 수 있다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아직 이른것 같다. 

유태인들의 삶만큼이나 고단한 역사를 짊어지고 왔던 그들의 언어 이디쉬어에 대한 연대기 "Yiddish: a nation of words "는 한 인물의 기구하고도 파란만장한 전기처럼 읽히며,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니라도 늦은 시간까지 읽는 이를 깨어있게 만드는 흥미진진함으로 가득했다. 오랜 시간동안 천시와 경멸의 시선을 견디며 전세계 유태인들의 정신 속에 자라나 유산의 운반자로서 생명을 끈질기게 이어오다가도, 정작 가장 꽃피어야 할 시기에 짧게 반짝인후 소멸해버린 언어의 운명은 너무나 아이러니컬했다. 이 책뿐만 아니라 "젠틀 매드니스"에서도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는 아론 랜스키의 이야기와 함께, 유태인의 언어 - 히브리어와 함께 - 이디쉬어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꼭 독서를 권하고 싶은 좋은 책이다.

"Yiddish: a nation of words"에서 가장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던 내용은, 일부 유태인들이 스탈린의 시베리아 개척 계획에 일환으로 시베리라의 동쪽끝 비로비잔까지 이주하여 자치지구를 형성하여 살았다는 사실이다. 나라없는 서러움에 더이상 시달리지 않으며 살아보겠다는 희망으로 가득차 대륙을 가로질러 이곳까지 이주한 유태인들은 혹독한 추위와 가뭄에  대부분 숨을 거두었다. 비로비잔은 연변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다. 남으로 가면 블라디보스톡이 있다. 지도를 보면 중국과 함께 우리나라도 보인다. 언제나 먼 유럽에서 일어난 역사의 일부로만 생각했던 유태인들이 이렇듯 가까운 곳까지 와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처럼 다가왔다. 만일 그들이 예측할수 없는 역사의 물줄기를 타고 우리나라까지 내려왔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거센 쇄국과 척양의 방배를 피해 한반도의 어느곳엔가 둥지를 틀었다면 그들로 인해 우리나라의 역사의 몇페이지는 어떻게 다른 내용을 담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The Yiddish Policemen's Union"을 읽고, 나는 어쩌면 다른 연유로 마이클 세이번 역시 비슷한 생각을 품게 된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즐거운 이유는 이 유명한 작가보다 내가 그런 상상을 몇년 앞서 했다는 단순한 자부심 때문이다 ; )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대학교 선배 한분의 이름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내가 "채봉이 형"이라고 농담삼아 부르곤 했던 작가가 아닌가. 그러니 이 글에서도 채봉이 형이라고 계속 부르기로 하자. "카발리에와 클레이의 놀라운 모험"에 이어 두번째로 본 채봉이 형의 소설은, 내 길고 긴 유태인에 대한 관심속에 어렴풋이 모양새를 띠었던, 이스라엘이 아닌 유태인의 국가라는 가상을 본격적으로 소설화한 미스터리 + 사변물이다. 소설 줄거리야 여기저기 잘 나와 있으니 반복할 필요는 없을것 같다. 안 그래도 '줄거리는 한 줄도 나오지 않는 독후감 쓰기'를 실천하기로 했으니. 휴고상까지 받을줄 알았으면 2007년 네덜란드 장기출장때 워터스톤에서 진열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 기억이 나니 만남이 훨씬 일렀을 수도 있었지만, 사실 "카발리에..."를 읽고난 느낌이 그다지 산뜻하지만은 않아서 '기회가 되면 먼저 원더보이즈(Wonder Boys)를 보자' 하는 생각에 미루었었다. 그리곤 며칠 뒤에 산 아인 랜드의 "아틀라스"를 보느라 거의 한달을 까먹는 바람에 기억에서 잊혀졌었다 : )

어느 작가든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읽던 때가 지나고 이제 스타일에 민감해진 탓인지 (아니면 너무 많이 읽은 루스 렌델의 스타일에 중독이 되어선지), 채봉이 형의 글은 그다지 마음을 사로잡질 못한다. 현란한 문체가 오히려 소설의 흐름을 느슨히 만든다는 느낌이 든다. 그김에 좀더 불만을 늘어 놓아야겠다. 유태인의 가상국가라는 매력적인(꼭 내가 먼저 생각해서가 아니라 ;) 제재를 가지고 만일 딱 소설 하나만 쓰고 딴데 눈길을 돌린다면 이건 죄악이다. 적어도 트릴로지 정도는 써야 한다. 마이어 랜즈먼을 계속 주인공으로 내세워도 좋고, 소설에서 슬그머니 나왔다가 지나가는 배경정도로 머물러 버린 미정부의 알래스카 영토 회수 계획에 얽힌 유태인들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아니면 희극적으로라도 좋으니 제발) 그린 시트카 연대기를 써도 좋다. 이거 뭐 유태인 한 사람의 죽음을 너무나 전형적인 탐정물로 일관한 셰이번의 이번 시도는 미흡한, 아쉬운 점을 한아름 남긴다. 사실 왜 휴고상까지 받을 수 있었는지도 좀 의아하다. 이 소설에서 사변적 상상력은 그저 배경에 지나지 않을 뿐인데 말이다. 오히려 에드가상 후보에 올랐다면 모를까. 매우 보수적인 추리작가 협회에 비해 SF 진영은 메인스트림에 개방적이라는 면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겠으나, 그 개방성은 매우 최근에야 가미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버릴수 없다. 유구한 전통이었다면, 마찬가지로 사변성이 훨씬 강하며 유태인의 목소리를 빌어 훨씬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전개해간 필립 로스의 "Plot Against America"에는 왜 상을 안 줬을까. 고독한 필립 말로우의 분위기를 흉내낸 것만 같은 주인공의 평범한 탐정물인 이 작품은 훌륭한 미스터리도 아닌것 같다. 내가 스페인어를 읽을 수 있었다면 기꺼이 독서를 중단하고 사폰의 "El Juego del Angel"을 사서 빨아들이듯 읽기 시작했을 것이다. 

채봉이 형한테 좀 미안하긴 한데, 아마도 기대를 너무 많이 한 독자의 불평임을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균형을 잡는 차원에서 현재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한 (288/342), 꼭 에릭 시걸의 소설 한 구절처럼 시작하는  아마존 리뷰 하나를 옮겨서 붙인다. 채봉이 형 미안해요, 속편 꼭 쓰세요!

"What can you say about a book like this? Not much without giving something away. It's audacious as can be believed. What's it about? Read the Publisher's Weekly blurb above. Or, better yet, don't. 

Chabon is a genius and a madman, a wizard and a mensch. He's a wrecking crew, a culture-blender, and a rebbe packing heat. Who else would, or could, take Nick Charles and put him in Shalom Shachna's body? (Or maybe it's the other way around.) Equal parts Kabbalah and Ka-Bar, it's funny and gripping, and entertaining, and so heartbreaking, at times, it's hard to breathe. 

In sum. I found it extraordinary - the concept, the language, the characters and the plot. It's not perfect, but it is simply one of the best novels I've read in a decade. Is that "helpful"? I doubt it. If I were you, I wouldn't want to know more. Spoilers are odious, irrelevant, and available elsewhere (note Kakutani's review in the Times). If you love Chandler, Hammett, Roth, and I.B. Singer, I suspect you will love this. 

Put some Manischewitz in a lowball and sit by the electric fire and crack this book o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