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04, 2009

고딕소설

  조앤 해리스의 최근 소설들을 마저 읽으려는 계획을 바꿔서 대신 손댄 그의 데뷰작품 "Sleep, Pale Sister"를 다 읽고 덮은게 몇주전 월요일 새벽이었다. 회사일이 바빠서 연이어 읽을 틈을 못내 잠자리에서 몇 페이지씩 갉작이다, 휴일이 다 끝나가던 밤 마침 절정을 향해 오르던 소설의 내러티브의 힘에 몸을 맡겼다. 읽은지 한참이 지나니 잔 독후감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자신을 꺼내주러 올 모즈를 기다리며 춥고 캄캄한 지하의 묘지에서 엄습해오는 추위에 불안감에 공포의 극단까지 몰렸을 에피의 심정인데 어째 그것이 이상한 색과 퀘퀘한 냄새를 풍기며 공감각적으로 덤벼와서 꿈에 나올까 겁이 난다. 초콜릿, 오렌지 다섯 조각 등과 쓴 작가와 연결짓기 매우 힘든 음지의 요사스런 힘으로 축축히 젖어있는 고딕소설이다.

해리스가 서문에 이 소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짧게 적어 놓았다. 여기 옮겨 보면:

"죽은 자를 되살리려는 시도는 좀 특별한 종류의 사람이 아니면 원치 않는 일일 것이다. 죽은 '책'이라면 특히 더 주의를 요한다. 잃어 버린 보물 한점한점마다 부주의한 발굴자가 파헤쳐야 할 우유 병뚜껑은 수백개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괜히 오래 전에 쓴 책 다시 꺼내 들다간 감당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뜻으로 쓴 말 같음). 지난 십여년동안 Sleep, Pale Sister를 사라져 버린 시간의 유물 쯤으로 여기는데 익숙해져버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더웠던 1993년 여름 나는 딸 하나와 책 한권을 세상에 내보냈다. 하나느 삶을 이어갔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못했다. 내게 있어 경쟁은 없었다. 세상은 하루 아침에 바뀌어 버렸고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던 것이다. 갑자기 출판에 대한 욕구는 한때 그랬던 것처럼 그닥 절실히 다가오지 않았다. 2003년 무렵 그 책은 이미 절판된지 오래였다. 처음 출간뒤 후 책을 한번 들추어 보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그 책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어 없었다.

하지만 모두 그런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그 책을 읽은 사람이 있었다. 그중에 출판업계 사람들도 있었고 팬들도 있었다. 또 단순히, 어떻게 초콜릿의 저자가 영국 고딕 소설에서 프랑스 식탐의 세계로 도약했는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몰려드는 재출간에 대한 요청에 당황스러웠다. 아마존에 남아 있던 재고 수백부가 순식간에 동이 나버렸다. 출판사에는 책을 다시 찍어 달라는 편지들이 쇄도했다. 마침내 우리는 한번 더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아미 실제 해야 할만큼 많이는 아니지만 처음 원고를 약간 손을 보았는데, 곧 깨달은 사실이, 이 환자는 본격적인 수술을 받기엔 너무 연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은 실수 몇가지를 바로잡는데 그치기로 했다. 그러는 도중 스스로도 놀란 일이지만, 아직도 내가 이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을 아끼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책은 죽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잠들어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두번째 기회가 주어져서 기쁜 마음이다."


   이런 류의 음습함으로 무장한 내가 아는 작가는 몇 안 된다 (사실 무슨 장르를 꼽아봐도 아는 작가는 몇 안 될거다). 현대라면 우선 스티븐 킹이 떠오른다. 호러에서 메인스트림의 넓은 장르의 폭을 오가는 그이지만, 인간의 근원적 공포심을 선혈과 뱀파이어가 아닌 심리묘사로만으로 탁월하게 자극해서 읽는 이를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공포의 세계로 이끄는 일련의 소설들이 아마 자랑할만한 대표작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Four Past Midnight" 등은 한밤에 읽지 않는게 좋았다. 부스럭거리는 주위의 모든 것들을 섬뜩한 괴생명체로 보이게 만드는 (문자그대로) 소름끼치는 소설들이다.

  하지만 정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소설은 "Dead Zone", "Green Mile" 등 초현실적 배경과 휴머니즘이 뒤섞인 이름 짓기 애매한 부류이고, 좀더 냉정히 말한다면 킹의 대표 소설 전반에 눅눅히 깔린 공포 호러의 소설적 유전자는 해리스의 데뷰 소설과는 약간 길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긴 해서 "고딕" 소설이란 꼬리표를 붙여 주기엔 조금 어색한 감이 없지 않다. 역시 "고딕"하면 내 맘속에 마치 돔문을 열고 출격하는 마징가 제트처럼 서서히 솟아오르는 작가는 따로 있다. 그 사람의 소설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적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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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잘 기억 안나는 오래된 동서문화사 World Great Books 전집에 몇몇 이가 빠진 번호가 있다는 걸 알아챈건 아주 뒤늦은 대학 무렵이었다. 아마도 아버지께서 전집으로 들여놓으신 것같은 이 책을 난 거의 보지 않았으니 군데군데 그 빈곳은 십중팔구 이따금 우리집을 드나들었던 대학생시절 육촌형들 몇몇이 "잠시" 빌려간후 발길을 끊어서 생겼을 것이다.

  한창 헌책방에 바삐 다니던 때, 신촌, 외대, 경희대 근처의 헌책방을 드나들며 책을 찾던 중, 반가운 그 "빠진 이" 중 한권과 마주하게 되었다.

레베카. 뒤 모리에. 손소희 역.   World's great books 72

  내게 영화에 어느 정도 관심과 지식이 있었다면 그 책에 얽힌 사정을 조금이라도 알았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그러지 못했고, 표지의 모딜리아니 그림과 어딘가 낭만적 울림이 있는 소설의 제목과 저자의 이름, 그리고 뒷커버에 실린 작가의 단정한 아름다움에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가 담긴 내가 미처 모르는 고전일 것이라는 어렴풋한 단정을 한 채 행복한 책사냥의 발길을 마무리했던 것 같다.  굳이 읽기 위해 산 책이 아니었던 터라 등하교길에 읽기 위해 책을 고르다 레베카를 떠올린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후였다. 지하철에서 책을 펴들고 있노라면 이따금 주위의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럴만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고색창연한 표지의 낡고 오래된 책이 풍기는 서권기가 있었을 것이다.

  "지난밤, 나는 또 만더레이에 간 꿈을 꾸었다." 아름다운 첫 문장이었다. 가슴저린 낭만적이고 고전적인 러브스토리가 펼쳐지리라 기대하고 시작했던 독서에 대한 기대감은 그러나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조각나듯 부서져 버렸고, 나는 기괴하고 축축하고 한기 감도는 중세 영국 어느 지방의 대저택 맨더레이 속으로 붙잡히듯 빨려 들어가, 가슴 졸이며 주위의 모든 소음을 망각한채 소설에 몰두했다. 귀에 들어오지 않던 소음 가운데는 다음역 안내 방송도 있어서 나는 두어번 내릴 정거장을 지나쳐 버리곤 했다. 색바랜 책갈피 사이에 빼곡히 적힌 활자들이 20세기 밝디 밝은 도시 지하철 조명 아래 서있던 내 머릿속에 우뚝하게 세워 놓던, 새벽의 푸른 기운 감도는 이국적 저택의 모습과, 그것이 전해 주던 분위기는 지금도 기묘하게 사실적이다.

  아쉬움 가득 섞인 회고로 시작하여, 중세풍의 러브스토리처럼 흘러가던 이야기는 이윽고 미스터리 스릴러와 같은 긴박함을 띤 채 급한 물살을 타듯 흐르다 급기야 초현실적인 파국으로 치닫는다. 표지로도 제목으로도 연상할수 없었던 내용에 무수한 궁금증을 품게 된 후에야 비로서 조사를 통해 내가 대프니 뒤 모리에라는 고딕풍 소설의 대가의 대표작을 읽었음을 깨달았다. 그 뒤로 내게 고딕 소설이란 '레베카'를 읽으며 느낀 인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성과 합리에 배치되는 중세의 미혹스러움과 불가사의함이 제재와 상황 가득 자욱히 깃들어 있는 문학이 바로 고딕 소설 장르라고 말이다.

  그 뒤로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짬을 내어 들른 헌책방에서, 서가를 브라우징 하기전 저자명 D 코너에 먼저 고개를 들이 밀고서 눈에 뜨이는 대로 뒤모리에의 소설들을 한 두권씩 사모으는 쇼핑을 하곤 했다. 호주 배낭 여행중 들른 브리즈번의 한 책방에서, 네덜란드의 소도시 즈볼레의 헌책방에서, 뉴욕의 스트랜드에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은채 얌전히 색이 바래 가던 뒤 모리에의 대표작들을 발견하고는 그 책들을 손에 든채 호텔로 돌아오던 일은 큰 즐거움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레베카'의 여러가지 에디션이 눈에 뜨일 때 가장 반가왔던 것 같다. 이후에 받게될 찬사와 명성을 전혀 예상치 못한 듯 다소곳이 낡은 1938년판 (출판된 바로 그해다), 신기하게도 시간의 거친 공격을 받고서도 더스트 재킷까지 온전히 남은 52년판, 레베카를 다른 추리소설과 함께 실은 두툼한 걸작선, 그리고 레베카의 두문자 R이 아름답게 도안된 발간 55주년 기념판 등, 내 편벽이겠지만 책 역시 다른 물건과 마찬가지로 그 실용적인 목적에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매력이 덧대어져 있을때 비로소 온전한 가치를 지니는게 아닐까. 단순히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간직하고 싶은 욕심에 사모은 뒤모리에의 책들. 그동안 꾸역꾸역 사들이고 숱한 이사통에도 꿋꿋이 끌고 다녔던 온갖 책들을 숱하게 알라딘 중고 장터를 통해 내다 팔고 있지만, 구입과 독서의 즐거움이 한껏 어려 있는 뒤모리에의 책들을 내놓은 일은 없을 것이다.

  마음 여유로운 저녁을 며칠간 확보할수 있을 때 읽으려고 뒤모리에의 소설들을 꾹 참고 아껴두었다가 읽은 첫 장편은 'Jamaica Inn'이었다. 뒤 모리에가 처음으로 시도한 고딕 스릴러라 할수 있는 본작에서 이미 레베카와의 유사성이 보인다. 물리적으로 고립된 (여)주인공이 무지와 사악, 신비스럽고 초현실적인 힘, 공포에 시달리며, 구원의 손길처럼 보이던 것도 모습만 달리한 악의 편임을 알고 절망하다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의 결말로 마무리되는 이야기의 구조다. 선과 악으로 딱히 나누기에도 미흡하며, 결국 주인공이 해피엔딩을 맞았다고 볼수도 없는 설정들이 소설의 진행과 결말을 모두 무채색의 암담함으로 물들여 놓는다.

  겹치는 것이 꽤 많지만 개의치 않고 구입했던 여러 단편집들은 짧은 시간에 작가의 고딕적 소설세계를 탐험할수 있는 아주 좋은 대상이다. 최근 그중 몇편이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다. '파란 렌즈(Blue Lens)' '돌아보지마(Don't Look Now)', 그리고 레베카와 더불어 힛치콕 감독의 솜씨로 영화화된 '새' 등, 현대적 배경과 비현실적 제재가 뒤엉켜 미묘한 공포를 자아내는 멋진 작품들로 가득하다.

  남아 있는 뒤모리에의 사진들과 그의 바이오그래피를 훑어 보노라면 도대체 어떻게, 이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양지에서 커다란 삶의 고민없이 살다 떠나간 듯한 이 가냘프게 보이는 여인이, 그로테스크함이 출렁이는 소설을 쓸 수 있었는지 의아함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뛰어난 소설적 상상력의 원천은 어디일까 한없이 궁금해진다.

  한동안 열심히 찾아 읽다 그만 둔 캐롤 굿먼의 네번째 소설의 제목은 The Ghost Orchard다. 해리스의 경우와는 반대로, 주류에 가까운 미스터리물을 다루다 고딕소설로 잠시 외도하였다고 한다. 접었던 호기심을 이 기회에 되살려 봐야겠다. 이것과 뒤모리에의 My Cousin Rachel 두권을 놓고 저울질해보며 한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를 기다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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