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08, 2009

민음사 세계전집 기획 그리고...

피자집에서 주문을 해놓고 기다리다 뒤적거린 조X일보에서 본 구절이다. 200권을 돌파했다고 떠들썩했던 민음사 세계전집의 판형은 "여자들의 핸드백에 들어갈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댄다. 그런 디자인이 칙릿이 아닌 "세계문학전집"에도 적용될수 있다는 것도 우습고, 그런 책이 여자들 핸드백에 꽂혀 있는 걸 상상해 봐도 우습다. 집에 무엇무엇이 있나 찾아 보았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도리스 레싱의 "다섯번째 아이", 미겔 우나무노의 "안개" 이렇게 세 권이 전부다(존 바스의 "연초도매상"도 한권으로 나왔으면 아마 샀을것이다.  글자 좀 작게 만들고 여백 줄이고 판형 키우고 했으면 충분히 가능했을 일이다). 꼭 여고생 자비출판 시집처럼 생겨먹은 판형이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의도를 알고 나니 더 정이 떨어진다. 안 그래도 예전에 털어놓은 푸념처럼, 사고 싶게 만드는 모양을 가진 문학서적들은 씨가 말라가고 있어서 둘 데도 없는데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을 사모으고 싶어서, 몇개 빠진 책들이 아쉬워서 조바심을 낼 일은 없을것이다. 다행이라고 여겨야겠다.

2004년 읽은 최고의 책으로 꼽았던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 그의 책이 또 내가 읽을수 있는 언어(한국어나 영어)로 번역되어 나온다면 참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참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그동안 써놓은게 없었나? 얀 마텔의 초기작이 냉큼 재간된 것을 생각해보면, 그 소설이 일으켜 놓은 바람에 편승하기 위해서라도 예전 작품들의 번역 러쉬가 이어졌어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오늘 아마존에 그의 이름을 다시 쳐 보았다. 기쁘게도 좋은 소식이 검색 결과에 담겨 돌아왔다. 앞으로 4개월만 기다리면 그의 또다른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천사의 게임"이라는 제목의 책은 전작이 그러하듯 또 책에 얽힌 드라마틱한 이야기 한 편을 펼쳐 보여줄 모양이다. 정말 기대가 된다. 스페인어를 익혀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나 사폰, 마르케스 등의 책을 번역 출판 없이도 읽을수 있게 되려면 얼마나 시간을 들여야 하는걸까. 무척 흥분되는 상상이긴 하지만 기초교재 한권 읽어본 경험을 꼼꼼이 되살려 보면 그건 선뜻 마음을 먹을 일이 아닌것 같다...

좋아하는 작가의 새 책이 출판되길 기다리는, 오래전에 끝난 줄로 여겼던 즐거움이 다시 살아난다. 전에 캐롤 오츠를 좋아했다면 아마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신작이 나올거라고 농담삼아 이야길 한적이 있었는데, 그런 예외가 아니라면 이런 즐거움은 보통 2~3년의 기다림을 전제로 하는 일이니 그 긴 시간만큼 보답도 크기 마련이다. 6월까지 열심히 다른 책 읽으며 지내야겠다 싶다.

(온라인을 뒤져 보니 사폰의 인터뷰가 보여서 여기 옮겨 적어 놓는다. 원문은 여기에)

사폰은 1964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출판계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부터 줄곧 청소년 대상의 소설을 썼다. 1993년엔 첫 소설 "El príncipe de la niebla" 에데베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본격 소설로는 첫 작품인 "바람의 그림자"는 스페인 베스트셀러 목록에 일년 넘게 머물렀으며 20개국 이상에서 출판되었다. 저자는 현재 로스 엔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다.  


이상은 펭귄출판사에서 내놓은 저자 소개. 이어서 사폰이 직접 밝힌 그에 대한 몇가지 사실들:


"젊은 시절 뮤지션(작곡 편곡 키보드 연주, 신서사이저 프로그래밍, 녹음 프로듀서 등등)으로 일했으며 7년이란 긴 시간동안 광고계의 정글 속에서 처음엔 카피라이터로, 이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고된 일을 했고 또 TV 광고 제작/감독 일을 하면서 비자, 소니, 아우디, 폭스바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등 온갖 사악한 것들을 포장하면서 이 세상을 물들였다. 1992년 무렵 영혼이 다 삭아들 지경에 이르러  비로소 모두 그만 두고 늘 원하던 것 - 전업 작가 -을 하기로 했다. 그 뒤로 다섯 편의 소설을 썼고 이따금 영화극작가로도 일했다."


"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역사, 영화, 기술 등등, 찔러 볼수 있는 것은 다 찔러 본다. 또한 여러 도시들 - 특히 바르셀로나, 파리, 뉴욕 등의 비화에 흠뻑 빠져 있다. 19세기 맨하탄의 기이한 일화들에 대한 내 지식은 건전하다고 할 정도를 넘어서 있다."


"없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것 두가지를 꼽는다면 음악과 책이다. 카페인은 그틈에 끼기엔 함량 미달이다."


2005년 여름, 사폰이 반즈앤노블과의 인터뷰에서 답한 몇가지 내용:


삶이나 작가로서의 경력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는?

찰스 디킨즈와 모든 19세가 대문호들


가장 좋아하는 영화와 그 이유는?

시민 케인, 블레이드 러너, 그리고 대부 3부작이다. 영화 시나리오 작업이 소설에 끼친 영향이 크다. 영화를 하게 되면 여러가지 요소들에 대해 고려를 해야만 하는데, 한없이 더 복잡한 소설이 요구하는 점들에 대응할수 있는 서사 도구와 이야기의 구조에 관련된 것들이다. 현대의 소설은 19세기 고전들이 지녔던 장대한 규모와 야심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와 더불어 20세기에 발전한 서사 도구들과 융합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도구들은 아방가르드부터, 스크린의 이미지와 사운드의 문법을 차용하기까지, 못할 것이 없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가? 집필하면서 듣는 특별한 종류라도 있는가?

고전음악, 자작곡들. 내 아이팟에는 바하부터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전자음악까지 30기가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집에 음반이 수천장있다. 음악은 내게 있어 약물이다.


북클럽에 들어 있다면 어떤 책을 읽겠는가?

난 탐욕스런 독서광이다. 온갖 종류의 글들을 편견없이, 붙어있는 레이블이나 관행, 쓸데없는 비평 등에 혹하지 않고 읽기 좋아한다. 장르소설부터 고전까지, 무엇이든 읽으면서 조금씩 배우는게 있는것 같다. 꼬집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19세기 대문호들이야말로 아직 정복은 커녕 근처도 가지 못한 대상이라고 해야겠다. 디킨즈,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발자크, 위고, 하디, 뒤마, 플로베르 등. 확실치 않으면 고전으로 회귀한다.


집필시 무슨 버릇이 있는가? 예를 들어, 책상위에 무얼 두는가?

나는 야행성이다. 자정부터 새벽까지,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수집품인 용 인형(400개 가량 된다)에 둘러싸인채 글을 쓴다. 매킨토시만을 사용한다. 맥은 연대순으로 모델명을 읊을수도 있다. 지금은 맥드래곤 5로 글을 쓴다. 귀신도 못알아 보는 악필로 소문나 있다.


지금 집필중인 소설은 어떤것인가?

"바람의 그림자"에서 비롯된 장르와 기법을 혼합하고 한단계 발전시킨 새로운 소설을 쓰고 있다. "고딕 바르셀로나 4부작"으로 계획한 네권의 책 가운데 2부에 해당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웅담과 로맨스, 코미디, 미스터리, 그리고 구식이지만 빼어난 스토리텔링을 새롭게 다듬은, 다채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단숨에 정상에 올라선 작가들은 많지 않다. 현재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걸렸는가? 거듭되었던 출판 거절의 악몽이나 다른 일화들이 있는가?

"바람의 그림자"는 청소년 대상 소설 네권을 써서 성공들 거둔 뒤로 내놓은, "레이블"없는 다섯번째 작품이다. 2001년 처음 출판된 후 출판계와 문화계의 기이한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일부 비평가들 초기 호평에 이어 2년여간에 걸쳐 입소문을 통해 서점가와 언론의 보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을 읽은 독자들이 몇권을 더 사서 다른 이들에게 권하면서 컬트적 고전이 되었다. 마치 소설속의 화자처럼 일종의 "수호자"가 된것이다. 스페인의 문학계가 이와 같은 강렬한 반응을 보내온 것은 매우 오랜만의 일로(물론 전에 쓴 청소년물역시 소년 독자들 사이에서 비슷한 반응을 불러 일으키긴 했지만), 업계에서는 "사폰매니아" 현상에 대해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다. 출간 3년째가 되는 올해도 "바람의 그림자"는 아직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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