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09, 2009

전자책 편력기

벽에 꽂혀 있는 CD들을 보면서 늘 디지털 멀티미디어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꺼워 하는 사람인 만큼, 내 독서 세계가 역시 디지털 문화의 세례를 흠뻑 받았으면 하는 바람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 습관과, 채 버리지 못해 늘어나만 나는 책들을 수납할 공간이 없어 식구들의 원망을 날마다 받고 사는 처지로 인해, 나는 더더욱 전자책이 내 독서 생활의 주축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은 전자책 읽기를 몸에 익히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자꾸 애쓰다 보면 편해지겠지. 종이책 읽는 것처럼, 하는 바램으로.

그렇게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던 전자책과 친해지기 프로젝트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내게 딱맞는 전자책 디바이스의 입수였다. 들고 다니기 편해야 하고, 여러 책 포맷을 지원해야 하고, 배터리의 수명이 넉넉해야 하는 등의 기본적인 바램이 있었으나 과연 어떤 기기가 그 바램을 만족시켜줄 것인지는 직접 구입해 오래 써보기 전에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다음의 리뷰들은 그러던 내가 그동안 구입하여 써보았던 몇가지 전자책 디바이스에 대한 짧은 편력이다 (마지막 몇가지 전용 전자책 기기를 제외하면 나머지 기기들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전자책 적합여부를 삼는 것은 다소 공정한 일은 아닐것이다. 각각 제 나름대로 훨씬 더 값진 용도가 있었을 것이니 이 글에 실린 기울어진 시각으로 내린 판단은 적당히 감감하여 읽어 주시길 바란다).

1) Sony VAIO PCG-C1VN Picturebook

소니에서 내놓은 서브노트북이다. 저전력 소비를 위해 트랜스메타 칩을 적용하고 1024x480의 해상도에 일반 소설책 크기를 하고 있는 이 기계가  내가 처음으로 설레는 마음과 함께 구입해 전자책 읽기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첫 제품이다. 2000년 무렵에 나온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사양과 제원이었는데 가격 역시 걸맞게 혁신적이었다($3000). 2004년 중고로 ebay에서 900불을 주고 구입하였다. 요즘 나오는 넷북과 유사한 크기다.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이것이 윈도우즈 기반의 PC 라는 사실이다. 알고 있는 모든 포맷의 책들을 이미 입수 가능한 뷰어 프로그램을 통해 쉽게 볼수 있다. 휴대에 적당한 크기와 무게, 탁월한 포맷 지원으로 인해 아주 이상적인 전자책의 후보였다.

그러나 전자책으로서의 이러한 장점을 다 깎아 먹고도 남을 단점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배터리 수명이었다. 2시간도 채 안되어 비틀거리며 바닥을 치고 경고 메시지가 퍽퍽 떠오르는 탓에 가슴이 조마조마해 맘 편한 독서를 할수가 없었다. 결국 이 노트북은 휴대용이 아니라 항상 전원 케이블을 단채 자기전 침대 위에서 독서할때나 이용가능한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버렸다. 내게 전자책의 필수 기능으로 배터리 수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준 좋은 경험이었다.

또 하나 크지는 않지만 마음에 걸렸던 것은 느린 부팅 속도였다. 책이 보고 싶어 전원을 넣으면 느릿느릿 진행되는 윈도우즈 부팅 시간이 얼마나 길고 답답하게 느겨지는지 모른다. 실제로는 얼마되지 않겠지만 부팅이 비로소 다 되고 나면 어느새 독서욕이 살짝 줄어들어 있음을 느끼곤 했다. 윈도우즈 및 기타 데스크탑 운영체제의 한계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터리 문제는 보조 배터리를 몇개 더 구입하여 휴대하면 간단히 해결될수도 있는 문제였다. 출장 등으로 이동이 잦은 무렵엔 실제로 업무용 노트북을 위해 배터리를 하나 더 마련해서 유용하게 쓰기도 했는데, 그 당시엔 그 생각이 그다지 탐탁지 않게 느껴졌다. 만만치 않은 배터리 가격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2) HP Jornada 720

HP에서 내놓은, PDA의 명품 가운데 하나라 일컬어지는 휴대용 컴퓨터다. HPC(Handheld PC)라고 분류되는, 640x240의 가로로 길쭉한 스크린에 소형 키보드가 달려있고, 화장품 컴팩트처럼 접혀지는 Windows CE 기반의 PDA다.  ebay에서 상태 좋은 중고를 250불에 구입하였다.

뒤에 나열할 여러 제품 가운데에서 아직도 조나다로 읽은 전자책이 가장 많다는 사실은 이 기기가 제법 전자책 디바이스로 뛰어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상당한 수의 PDF 파일과 CHM, 일반 텍스트, 그림파일로 캡처한 책들을 조나다로 읽었다.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는 말은 전자책에 대해 할수 있는 상당한 찬사에 가깝다.   CHM 뷰어는 내가 직접 만들어서 아주 잘 써먹었다.

그 어떤 기기보다도 휴대가 편하다. 500그램 정도의 날렵한 무게와 일반책을 반정도 접어 놓은 크기로, 가방에 넣고 다니기 딱 좋았다. 외장 컴팩트 플래시를 꽂으면 수백권의 책이 들어간다. 탁월한 배터리 수명으로 인해 읽다가 배터리가 다 닳는 일이 한번도 없어 가슴 졸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정말 돋보이는 WinCE의 순간 부트 기능으로 전자책이 PC가 아닌 가전제품이라는 인식을 새삼스럽게 하게 만들어준 기기이기도 하다.

이미 오래전에 생산이 중단되었지만 끊임없이 중고 제품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이 제품이 지니고 있는 여러가지 매력이 아직도 시효가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ebay나 국내 khug.org에서 약 20만원 정도에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독서에 조나다를 활용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 하다(사실 무슨 휴대용 디바이스든간에 독서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로 해상도가 매우 낮아서 영문 텍스트라면 그런대로 괜찮지만 독서 속도가 빠른 한글 텍스트를 조나다로 읽다 보면 너무 아래 스크롤 키를 자주 누르고 있다는 생각에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가장 큰 단점이라면, PCTN 방식을 적용한 LCD 스크린의 치명적인 한계다. 직사광선 하에서는 전혀 화면이 보이지 않는 점이다.

3) SONICblue Progear Tablet PC

조나다의 작은 화면이 마음에 걸릴 때쯤, 배터리 문제가 있을것을 뻔히 알면서도 "집안에서만 쓰겠다"는 결심에 구입한 것이 이 타블렛 PC다. 마이크로소프트가 Windows XP 타블렛 에디션을 내놓기 한참 전에 나온 아마도 세계 최초의 태블릿 PC 모델 가운데 일것이다. Win98 내장 PC인데($1500),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생산이 중단된 때에 마침 관심이 갔던 탓에 ebay에서 500불을 주고 중고로 구입하였다.

용도와 한계를 어느정도 알고 구입한 장비인 탓에 큰 불편이나 아쉬움없이 잘 썼다(역시 만족감은 기대와 반비례하는 법이다). 원래 돌던 98을 지운뒤 Windows XP를 깔고 극심한 트위킹 작업을 해서 속도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했다.  초상화 모드로 놓은 768x1024 해상도의 이 기기는 PDF나 만화책 한페이지를 온전히 보여주어 아주 독서감이 좋았다.

예상했던 대로 배터리 문제가 치명적이어서 전원 케이블 없이는 불안한 마음에 독서가 잘 되지 않았다. 또 한가지 예상치 못한 단점은 설치한 XP가 이 키보드 없는 기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조작(페이지 넘기기)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점이었다. 특히 풀스크린으로 놓고 보아야 만족스럽던 Acrobat PDF를 쓸때는 앞뒤 넘기기나 임의의 페이지로 이동하기 위해 가상 키보드를 주섬주섬 띄워서 입력해야 했는데 그때  스타일러스 조작 실수가 잦았다. 유저 인터페이스의 한계가 드러났던 기기였다. 그리고, 한손으로 들고 보기엔 좀 무거워서 손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보통 무릎에 올려 놓게 보게 되었다.

이 책으로 신나게 보았던 Rule of Four나 수많은 컴퓨터 책들 CHM 파일들이 떠올리면 흐뭇하다.

4) SimPAD SL4

조나다보다 화면이 넓고 배터리 수명이 그만큼 오래가는 WinCE 디바이스를 물색하다 망에 걸려서 수소문끝에 구입한 것이 독일 지멘스사의 웹패드(WebPad)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제품의 한종류인 SimPAD다. ebay에서 190불을 주고 어댑터가 빠진 재고품을 구입하였다. 아마도 조나다 이후로 가장 독서를 많이 했던 기기가 아닌가 싶다(이 기기를 구입했을때 백수 처지라서 책 읽을 시간이 훨씬 많았던 탓도 있다...).

8인치 800x600 해상도의 화면에 WinCE가 돌아가는 이 제품은 조나다의 사용느낌과 비슷했다. 조나다와 비교했을때 장점으로 돋보였던 것이라면 화면이 커서 자주 키 조작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던 것이고(키보드는 없지만 기본적인 스크롤키와 핫키가 달려 있어서 책장 넘기기에 적합했다), 단점이라면 플래시 메모리 리더 기능이 없어서 PCMCIA 슬롯에 어댑터를 이용해 CF 메모리를 장작해야 했다는 점이다. 특별히 불편하다고 할수는 없겠지만, 껐다 켤때마다 무슨 이유인지 플래시 메모리가 다른 이름의 디렉토리로 잡혀서 인식시키기/계속 읽기 등을 하는데 다소 귀찮고 번거로왔다. 직사광선 아래서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점은 마찬가지로 답답했다.

5) ViewSonic ViewPad 100

이건 특별히 필요해서가 아니라 호기심에 그냥 사고 싶은 유혹을 못 이겨서 샀다. SimPAD와 거의 모든 면에서 동일한 웹패드인데 화면이 10인치로 널찍하고 CF 슬롯이 내장되어 있어서 조나다, 심패드와 이런저런 장단점을 공유하는 기계다. 좀 묵직하고 크다. 자주 안 쓸것을 알면서 왜 샀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들고 다니기에는 심패드의 크기가 최대라는 점을 확인했다.

6) Sony Librie EBR-1000

발표시 이제 더이상 전자책 기기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느낌에 가슴 설렜던  혁신적인 기기다. 구입 당시 일본에서만 판매가 되고 있어서 구매 대행업체 Nippon shop을 통해 42만원을 주고 구입하였다.

아, 전자 잉크의 놀라움이란. 일반 종이와 전혀 차이를 느끼지 못할 탁월한 독서감에, 배터리 문제를 거의 완벽히 해결한 초저전력에 초경량의 이 제품에 이상적인 전자책 하드웨어의 종착역이 가까이 왔음을 실감했다. 장점은 새삼스레 되풀이할 필요가 없을것 같다. 그 어떤 전자책 디바이스와 비교해도 독서감이 탁월하다. 전자책을 써보고자 하는 분들께 아무런 거리낌없이 추천하고 싶다.

단점역시 새삼스레 되풀이할 필요가 없을만큼 잘 알려져 있다. 이 멍청한 소니가 전용 프로텍션을 걸고 60일만 독서가 가능한 희한한, 자체 온라인 샵에서만 구입이 가능한 책으로 인식 포맷을 제한해 놓은 사실은 그 하드웨어적 탁월함에 비해 얼마나 어리석게 보이는지 모른다.

다행히 이러한 단점은 열렬한 애호가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극복되고 있다. 전용 포맷을 소니에서 공개함에 따라 , 프로텍션이 안 걸린 전용 포맷의 파일을 생성해주는 유틸리티가 개발되고, 소니가 공개한 개발 툴/소스와, 리눅스 기반의 동작 환경은 일부 매니어들의 도전을 자극하여 SDK 수준의 일반적은 뷰어의 개발이 가능하게 되었다. 현재 야후 그룹의 동호회에 들어가보면 일반 텍스트, DJVU,  마이크로소프트 ebook, GIF/JPG 뷰어 등이 다양하게 등장해서 소개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반 텍스트 파일을 전용 포맷으로 변환하여 보거나, 웹 페이지를 전용 포맷으로 변환해 주는 툴을 써서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 PDF 파일을 그대로 보는 것은 좀 무리다. 600x800의 높은 해상도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170ppi의 세밀한 화소덕에 한페이지를 한화면에 나타내자면 너무나 글자가 작다. 이미 A4/Letter 크기의 레이아웃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PDF 문서들은 아쉽게도 리브리에와 궁합이 맞지 않았다.

최근에는 일본 국내 전용 버전외에도 미국 시장 타겟인 동일 사양의 제품이 eReader라는 제품명으로 선보였고, 같은 전자잉크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해상도가 768x1024로 한단계 높은 제품 일리아드가 전자잉크 기술의 원천특허를 가지고 있는 iRex Technologies, Inc. 에서 출시되었다.

7) iRex Digital Reader

일리아드를 살까말까 정말 오랜 시간 고민을 하던 중 나온, 일리아드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화면 해상도가 무려 1024x1280 (10.2") 이며 4레벨에서 16레벨 회색조로 색상지원도 늘어나서, 드디어 A4/Letter 크기의 PDF 문서를 변환없이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첫번째 제품이 되었다. 세가지 모델 가운데 터치스크린을 지원하는 것만 현재 나와 있는 상태다. 수많은 PDF 문서들이 드디어 컴퓨터 밖으로 나올수 있게 만들어 준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성능의 전자책 기기다. 널리 보급되기도 전에 제조사에서 SDK 공개를 서둘러서 이미 각종 미지원 포맷에 대한 지원도 잘 갖추어져 있다.

물론 완벽한 제품은 없다. 아니,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터치스크린을 지원하는데다 버튼에 난데없이 정전용량 방식을 채택한 탓에 이 둘이 잡아먹는 전력이 꽤 되어 전자잉크의 "거의 무한한 배터리 용량"이라는 탁월한 장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배터리는 일반 사용시 약 7~8 시간 정도 버틴다. 이해할수 없는 부분이다 (터치 스크린을 비활성화시켜 놓을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버튼만으로는 조작이 매우매우 불편해진다).

며칠전 아마존이 내놓은 킨들 DX 버전은 이보다 약간 화면 크기가 작고(9.2") 터치 스크린을 지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격은 거의 절반밖에 되지 않아서 만일 일반 포맷 문서에 대한 지원이 잘 된다면 대체기기로 고려해 볼만 할것 같다.

최후의 선택은 아마 한단계 발전한 전자잉크 기반의 "그 무엇"이 되지 않을까 한다. 전자잉크의 화면 리프레쉬 속도는 느린 편이라 종이책을 볼때 많이 하게 되는 페이지 후루룩 넘겨 보기(플리핑)는 아직 요원하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놀라우니 몇년 더 기다려 보면 컬러 지원에 빠른 디스플레이 속도까지 갖추어진 멋진 기기가 등장해서 기뻐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들인 돈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전자책을 써야겠다.

5 comments:

큰머리 괴수 said...

이 많은 걸 직접 다 사서 써보셨단 말입니까. -_-;;



돌님의 주변에 감도는 '부티'라는 아우라가 근거없는 저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던 거로군요;;;

Unknown said...

빼먹고 안 적은 기기(아이팟 터치와 넥시오 155)가 있어서 추가하려고 들어 왔다가 z1h0님의 덧글을 보고 오해를 풀기 위해 적습니다. 평소의 저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부티가 아니라 빈티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아시면서... 어떻게든 없는 살림에 전자책의 시대로 옮겨 가고자 애면글면 하다보니 그렇습니다.



이런저런 기기들을 장만하여 써보고자 하면 무한한 인내력이 필요합니다. 우선 출시된지 얼마 안된 제품은 사면 안 됩니다. 엄청나게 값이 비싸기 때문입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단종되거나 새 모델이 나올때 쯤 되면 눈독 들이면 모델의 값이 뚝 떨어지고 이베이에 하나둘씩 급매물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도사리고 있다가 낚아 채옵니다. 경쟁자가 무척 많으므로 한두번으로는 성공할수 없습니다. 거래성립가격 등을 열심히 모니터링한뒤 스나이퍼 같은 프로그램을 써서 입찰 종료 3초전 상한 예상액을 쏘아 보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입찰가를 노출시키면 아웃비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저는 얼리어댑터가 아니라 스캐빈저;)에 가깝습니다.



제가 행했던 자금 마련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더이상 먼저 쓰던 제품을 미련없이 팝니다. 시장가보다 조금 낮추어 내놓으면 사려는 사람이 금방 나타납니다. 1~2만원 정도를 아까워 하지 말고 현금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서 더이상 효용가치가 없어진 물건들을 처분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급격히 중고가가 하락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빨리 파는 것이 결국 유리합니다.



월급은 생활비로 들어가서 꺼내쓰면 바로 자국이 남으므로, 몸을 팔아(?) 비자금을 마련합니다. 잔업비나 출장비를 모았습니다. 전에 다니던 삼용전자(가칭)에서는 평일 야근, 주말 잔업을 하면 하루에 몇만원의 잔업비가 나옵니다. 이걸 자의반타의반 매일 하다보면 한달 7~80만원이 모입니다. 그걸 비자금 통장에 차곡차곡 넣습니다. 그리고 해외출장시 나오는 일당 (약 $50)을 최대한 아꼈습니다. 자동차 안타고 걸어다니고, 밥도 양 많은 중국음식을 시켜서 몇끼에 걸쳐 나눠 먹는 등의 궁상을 떨면서 역시 비자금 통장에 차곡차곡 넣습니다.



기타 지출을 최대한 줄입니다. 예를 들면 제 핸드폰은 2005년에 옥션에서 만원 주고 구입한 모델입니다. 5년째 안 바꾸고 쓰고 있습니다. 주위의 조소와 염려섞인 조언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팁니다. 보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서 보고, 오래 보아야 하겠다 싶으면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각 페이지를 카메라로 찍어서 파일로 보관합니다. P2P, 인터넷 등을 뒤지고 무료 ebook 사이트 등에 가입해서 책들을 다운로드 받거나 캡처합니다. 더 이상 안보는 책들을 내다 팝니다. 특히 예전에 샀는데 절판된, 그래서 콜렉터 아이템이 된 SF, 추리 소설들을 이런저런 동호회에 들어가 비싸게 팝니다.



z1h0님 말씀처럼 제게 숨겨놓은 총알이 많아서 이 궁상 안 떨고도 즐겁고 명랑한 구입 생활을 양지에서 즐길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주 생각하곤 합니다. 정말 로또 외에는 방법이 없단 말입니까.

큰머리 괴수 said...

@진돌 - 2009/05/10 16:06
아아.. 싱그러운 부티인줄 알았는데 그게 실은 갈데까지 간 궁상이었다니, 그 절박함과 애처로움에 안타까움이 홍수처럼 밀려오는 군요. 백조가 고고해보여도 수면 아래에서는 진창에서 죽어라 발을 놀려야 한다는 삶의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하여튼, '비자금 통장이라 불리우는 딴주머니를 차라'가 가장 중요한 비결인 거로군요. 유부남이 된 후에도 유용한 팁인거 같아 머릿속에 메모해 두렵니다.

eggie said...

진돌님, 혹시 킨들 구입하실 생각 없으신가요? 구입하시면 구경좀.. 굽신굽신.

Unknown said...

어쩌나... 주문한 킨들 왔는데요. 아주 예쁘게 생겼습니다만. 이번주 휴가중이시죠? 곧 다른 사람 손으로 넘어갈 예정이라 구경 못하실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