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27, 2009

웅진 포스트 모더니즘 전집에 대해

대학 1학년때, 교양 과목으로 신청했던 영산문 강독 교재를 받고 훑어 보던중 너무나 재미있는 단편 하나와 마주쳤다. "Love is Fallacy" 라는 제목의 그 소설은, 논리적이기 이를데 없는 한 학생이 미모의 여학생을 자신과 어울리게 교화(?)시키기 위해 논리학의 기초를 가르치다가 그만 오히려 도저히 논리로 설명할수 없는 사랑의 논리에 오히려 당하고 만다는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보고서, 그 다음해 교양 과목이었던 '논리와 비판적 사고' 과목을 들뜬 마음으로 신청했다가 피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몇년 뒤에 서점을 기웃거리던 중 "사랑은 오류" 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하얀 커버의 책이 눈에 띄었는데, 굳이 내용을 들춰보지 않아도 오래전에 읽었던 바로 그 소설의 번역임을 알 수 있었다. 무척 반가왔다. 집어들고 읽어 보던 내게 그 책에 실린 단편들이 전해준 감동과 충격은 오래 서있느라 쿡쿡 쑤시던 다리의 통증도 잊게 해줄만 한 깊은 것이었다. 커트 보네것의 해리슨 버거론, 보르헤스의 죽음과 나침반, 오랜만에 다시 읽어본 맥스 슐만의 사랑은 오류, 또 'LAST BUT NOT THE LEAST' 오오, 경탄을 금할 수 없는 앰브로스 비어즈의 올빼미하천 다리에서 생긴 일(편집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두 문장이 페이지가 바뀌면서 나와 충격이 더 했다) 등, 사실 포스트 모더니즘이 무엇인지, 기획 번역자인 김성곤 교수가 그렇게 열심히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머리에 남지 않아 미안하긴 한데, 아직도 그 정의는 좀 애매모호하지만(그래서 혹시 애매모호한게 포스트 모더니스틱한게 아닌가 하고 자위하곤 한다), 그 읽을때의 신선한 느낌과 오래가는 청량스런 독후감 덕에 난 포스트 모더니즘 소설들이, 계속 정의는 잘 모르지만, 모더니즘, 실존주의 등등의 문학사조에 비할 때 내 취향에 아주 가까운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좋아하기로 했다.

 

아는 선배 누님이 졸업 논문 소재로 써서 제목만 알고 있던 광막한 바다 사르가소, 보네것(제일 많이 나온다?)의 장편 제일버드, 지금은 익숙한 이름이 된 코진스키의 편력, 지금도 익숙하지 않은 이름인 존 혹스의 경마장의 함정 등이 이 웅진출판의 포스트 모더니즘 걸작 선집 5권의 나머지를 이루고 있다. 장편이었던 나머지 4권을 내가 첫 단편집만큼 즐거워하며 보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포스트 모더니즘 역시 나한테 만만한 것은 아닌가봐, 그렇게 생각하며,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이 시리즈 외에도 포스트 모더니즘스러워 보이는 소설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고 나도 모르게 다가온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를 이제는 아는 척 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좋은 책들은 훌륭한 독후감을 전해주는 것 이외에도 새로운 독서의 지침 역할을 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 시리즈물을 읽고서 새롭게 알게된 문학의 세계는 지금도 내 주요한 독서 목록의 일부를 점하고 있다. 어딘가에서 김성곤 교수의 번역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불평하는 글을 본 기억이 나는데 적어도 나는 도저히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없다. 문학과 교수들이 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창작 다음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이 바로 번역에 의한 작품의 소개라고 생각한다. 난 김성곤 교수의 기여로 인해 우리나라에 넓어진 포스트 모더니즘 문학사조에 대한 인식의 확산에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 큰 수혜자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꺼이 여기고 있다.  (2004.8.5)

 

어렵사리 모두 장만하여 열심히 본 깨끗한 전집 5권을 최근 알라딘 중고서점을 통해 팔았다. 좋은 새 주인 만나 사랑받으며 지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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