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27, 2009

필립 로스 - Plot Against America

아마존 스태프들이 올해의 주목할만한 소설 1위로 꼽은 것은 대체 역사물의 형식을 빌린 사변소설, 필립 로스의  "Plot Against America"이다.  전에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영화 "휴먼 스테인"이 로스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임을 뒤늦게 알고 읽어본 경험이 있고 그의 소설로는 이것이 두번째 감상한 것이다.

 

제이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세계를 위협하던 시절이 배경이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이라크 침공이라는 현재형의 전쟁 상황을 맞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미국의 태도를 겹쳐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끔, 지금처럼 그때도 세계사를 주도적인 입장에서 써내려간 미국의 그릇된 선택으로 인해 파멸로 치닫는 작게는 뉴저지의 한 유태인 가정, 크게는 전유럽과 아시아의 암울한 모습을 작자와 동명인 아홉살 소년 필립의 눈을 통해 일말의 희망도 없이 냉정히 그려보이고 있다. (실제로는
4선까지 성공한) 루즈벨트가 세번째 대선에서 나치의 제3제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비행영웅 린드버그에게 대권을 넘겨주고 정계에서 은퇴한 무렵은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인류가 다시 한차례 그 역사의 흰 비단을 검붉은 핏빛으로 물들이려하던 평화의 임계점에 이른 시기였고 선택의 기로에서 참전의 명분과 당위성을 놓고 결전을 벌인 린드버그와 루즈벨트 가운데 미국민들이 차기 대통령으로 선택한 사람은 히틀러의 이성에 대한 흔들림없는 신뢰를 바탕으로 수많은 미국의 젊은 생명을 남의 땅에서 헛되이 희생할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동시에 대서양을 논스톱으로 함께 건넜던 자신의 비행기 '세인트 루이스의 기상(Spirit of St. Louis)'호를 직접 몰고 미대륙을 누비면서 파일럿  차림으로 계속 벌인 연설로 국민들의 감정마저 사로잡은 린드버그였다.

 

 

"휴먼 스테인"에서 상당한 반전의 극적 효과를 낼수도 있었던 주인공의 혈통을 굳이 감추지 않고 초반부터 노출하여, 소설을 통해 주려는 것이 잔재미가 아님을 소리내어 강조하는 것 같았던 로스는 본 책에서도 전제하는 대체역사로 인해 다른 길을 가는 세계사적 사실이나 비극적 파국을 조명하기 보다는 린드버그의 집권으로 미국내에서 창궐하는 반유태주의, 린드버그의 임전 정책에 극렬히 반대하여 결국 최초의 유태인 차기 대선 주자로 나서서 미정부와 독일의 비밀스런 연합을 목청높여 비난하다 암살로 최후를 맞는 월터 윈첼, 그리고 로스 집안 사람들의 운명과 같은, 어떻게 보면 역사의 소용돌이속 작은 에피소드처럼 여겨지는 사건들에 상당한 정성을 기울이면서 하나하나 치밀하게 묘사하는 다소 예상과 다른 내용으로, 이 재미있는 소재를 가지고 똑같이 시작했다면 훨씬 잘 읽힐 페이지 터너를 써냈을 대체역사물 전문가인 터틀도브와는 차원이 다른 고고한 품격(?)을 유지하여 '과연 문학상 받는 소설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하는 생각에 읽으며 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로스는 자신의 소설이 독자를 오도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배제하려는 듯 책의 말미 약 30페이지를 할애하여, 그것도 본문보다 한두포인트 작은 깨알같은 서체로, 독자에게 일러두는 말, 실제의 역사 전개, 각 등장 인물의 실제 연대기를 빼곡히 기록하고 있어서, 결말도 진상도 밝히지 않은채 독자를 혼돈의 이차대전속 한가운데 내버려둔 채 느닷없이 끝내버린 자신의 소설 뒤를 나름대로의 상상력으로 메워보는 것으로 독서를 마무리하려고 하기 마련인 독자들에게  '쓸데없는 상상은 금물'이라고 일침을 가하는 동시에 때가 때인만큼 평단으로부터 민감한, 혹은 의혹에 찬 비평이 쏟아질 가능성 역시 막아버리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 감상문이 흉내내고 있는것처럼 요즘 들어 보기드문 만연체와  고색창연한 GRE 빈출형 단어들로 무장한 로스의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것은 그 내용과 스토리텔링의 완성도를 떠나서 상당한 고역이라 소설적 재미가 그로 인해 상당히 감감되었을 것이 분명하므로(이렇게 한페이지도 쓰기 힘든 긴 문장들로 400페이지를 채운 로스의 필력에 경의를 표한다) 아마존 리뷰에 가득한 호의적인 평들과 제 독후감이 비슷할 수가 없음을 양해해주셔야겠다. 아마 좋은 번역자와 출판사를 만나 한국어로 읽어 볼수 있다면 미처 들여다 보지 못했을 저자의 의도도 들여다 보고 독서의 기쁨도 더 맛볼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회와 능력이 된다면 다음엔 아마존 독자들이 뽑은 올해의 주목할만한 소설 1위작 'Jonathan Strange and Mr. Norrell'을 읽고 감상을 공유해보고 싶다. 서평을 훑어보면 영국 소설가의 데뷰작으로 톨킨류의 환상과 역사가 결합된 독특한 소설이라는데 호기심이 인다. (200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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