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가 보기 드물게 단편집으로 퓰리처 소설 부문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그런 예가 또 있나 싶어 자료를 뒤져 보다 마주친 것이 1996년 내셔널 북어워드를 수상한 단편집 "Ship Fever and Other Stories" 였다. 안드레아 바렛이라는 이름과 그의 소설을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Ship Fever"는 매우 인상깊은 책이었다. 그 책에 담긴 단편 소설들은 흔히 사용되는 의미와 약간 다르게 "과학소설"이라 부를만 했다. 즉 미래의 기술이나 사변적 상상력으로 대변되는 SF가 아닌, 말 그대로 과학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그랬다. 이 소설을 평가한 적절한 문구를 하나 인용해 보면:
"바렛의 소설 쓰기는 산문이라는 연못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다; 그 돌은 과학이며, 아름답게 밖으로 퍼져나가는 동심원들은 개인과 사회를 통해 그려 보인 휴먼 드라마다(Nomi Eve, Newsday)."
안드레아 바렛의 경력을 살짝 들추어 보면 어떻게 이와 같은 창작의 계기가 부여되었는지 엿볼수 있다. 뉴욕 출신으로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원 진학까지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대학원 코스를 밟으며 진로에 회의를 느끼게 되는데, 바렛이 회고한 바에 의하면, 그가 되고자 했던 생물학자의 모델은 다윈이나 월리스같은 19세기 근대 생물학 초창기의 연구활동 - 관찰과 발견, 명명 등이었지 해부/분석과 같은 현대 생물학의 주도적 흐름인 분자 생물학이 아니었던 것이다. 잠시 역사학에 눈을 돌리기도 했으나 그 역시 원하던 바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서 비로소 바렛은 전부터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던 창작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소설 곳곳에 자연과학이 사건과 상징의 소재로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88년에 내놓은 첫 소설 "Lucid Stars"는 할머니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보고 배우며 자란 별자리에 매혹된 주인공 페니와 그의 가족들 - 반복되는 이혼과 결혼으로 인해 느슨한 의미로 확장되어 가는 - 의 이야기다. 별거로 결손가정의 아픔을 겪으며 커나가는 막내딸 조던은 계속 멀어져가는 식구들의 거리를 좁히는 구심력으로 작용하고, 그에 힘입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보면, (아마도 바렛이 의도한 바 대로) 그들이 밤이 되면 하늘에서 찾아보며 위로를 얻는 별자리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실과 사건의 기술이 아닌 인물들의 내면과 성격이 섬세하게 그려져 천제 성좌의 낭만적 은유와 함께 깊은 여운을 남기는 바렛의 첫 소설은 발표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그후 발표한 세편의 다른 소설들도 역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바렛의 대표작이라면 앞서 잠시 언급한 1996년작 "Ship Fever and Other Stories"를 꼽는다. 멘델의 후손, 스냅샷처럼 잡아낸 린네(명명법의 제안자)의 노년, 식물학자와 동물학자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책 분량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중편으로, 1847년 유행성 티푸스에 죽어가는 아일랜드 신대륙 이주민들을 치료하며 끊임없이 고뇌하는 나약하고 인간적인 의사의 고난을 그린 감동적인 동명의 소설 등은, 과학이 주류문학의 소재로서 지니는 무한한 잠재력을 눈부시게 펼쳐 보인 훌륭한 작품이었다. 자연과학에 작으나마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매혹적으로 기억될 이야기들일 것이다. 유사한 과학소설이라 일컬을 만한 수잔 게인즈의 "Carbon Dreams", 사이먼 모어의 "Mendel's Dwarf" 등을 찾아서 읽어보게 하는 등, 내게 좋은 독서의 지침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바렛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2002년 새로운 단편집인 "The Servants of Map"이 출간되었을 때 출장 일로 뉴욕에 머물 일이 있었던 차에, 마침 14번가 반스앤노블에 바렛이 북투어를 온다는 광고를 뉴스레터에서 보게 된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4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기다리던 내 앞에 나타난 바렛은 은발에 키가 6피트쯤 되는 당당하고 건장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새 소설집에 실린 단편 하나를 낭독하고 참석자들의 질문을 받는 바렛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조용하고 나긋했으며, 수줍음마저 타는것 같았다. 더듬거리며, 책을 잘 읽었고 만나서 반갑다는 말 밖에 건네지 못한 내게 바렛은 "처음 만나보는 한국 독자"라며 웃었다.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일이다.
그 뒤로도 계속 되었어야 할 바렛의 소설 탐험은, 아마존에 주문한 "Secret Harmonies", "The Middle Kingdom"이 배달사고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열받아서 중단해버렸다. 새 소설 출간 소식이 들려오는 지금, 그 기념으로 다시 시작해 볼까 한다.
(2007.05.18)
1 comment:
(바렛을 만난 뒤 적어 놓은 글을 찾아서, 여기 붙여 놓습니다)
어제(2월 7일)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났다. 감명깊게 읽었던 소설집 [Ship Fever and Other Stories]의 저자 안드레아 바렛이 뉴욕시 14번가 반즈앤노블에 온것이다. 최근 새 소설집 [The Servants of Map]의 발매와 때맞추어 독자들과 만나기 위해 오후 일곱시에 그곳을 찾았다. 그 사실을 모르고 서점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는 나는 바렛의 소설들이 여느때와 달리 한쪽 열린 테이블에 따로 꺼내져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웬일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 보다, 붙여놓은 공고에 눈이 가 닿았다. 반가움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시대의 미국작가들의 소설들을 읽어보고 싶어서 이러저리 참고자료를 뒤적이다 알게된 안드레아 바렛은 중단편집 [Ship Fever and Other Stories]로 내게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전공한 생물학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에 고민하던 바렛은, 자신을 처음 과학의 길로 이끈 것이 과학 자체가 아니라 과학사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잠자고 있던 문학적 재능을 살려 소설쓰기에 도전한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속에 과학사의 이면에 묻혀졌을 법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익숙한 이름들과 함께 등장하여 동경과 푸른 들판같은 설렘을 안겨준다. 평범한 이들이 위인들의 곁을 잠시 스쳐 지나갈때 품게되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느껴본 일이 있는지. 그것은 초라한 자신조차 두드러져 보이도록 하는 경외감이거나 그 찬란한 빛에 가려 보잘것 없는 존재를 더욱 미미하게 만드는 좌절감일것이다. 바렛은 여러차례 한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꿔 놓을 수 있는 존재로 멘델, 린네, 다윈, 월리스와 같은 위대한 생물학자들을 선택하여, 그들과 직접 혹은 간접으로 만나 쓸쓸히 날개를 접거나 아니면 오히려 그 빛을 더욱 화려하게 반사한 가상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소설집 [Ship Fever and Other Stories]의 압권은 책의 사분의 일가량을 차리하는 동명의 중편일 것이다. 19세기말 캐나다로 건너온 아일랜드 이주민들의 병을 고치는 한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본작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당시의 상황 - 오랜 항해끝에 대서양을 건넜어도 배에서 얻은 열병, 티푸스로 죽어가는 이주민들의 처참한 실상과, 그들을 치료하면서도 끊임없이 정신적인 방황을 거듭하는 의사 그랜드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리고 있다. 그랜트의 희생은 그가 살려낸 사람들이 다시 새로운 대륙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삶의 열정을 회복함으로써 헛되지 않게 되고 그 이후 새로이 전개될 수많은 이야기들의 출발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미 사놓고 대기중인 책들이 몇권 있어서 신작의 출간 소식을 듣고도 구입을 미루던 중이었는데 뜻밖에 바렛이 뉴욕을 찾은 덕분에 당장 구입할 근사한 핑계가 생긴 셈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내리 누르고 소형 실내 콘서트홀처럼 꾸며 놓은 4층의 객석에 앉았다. 조금 있으니 낯익은 사람이 눈에 뜨인다. 근처의 유명한 중고서점 스트랜드의 지하에서 근무하는 대머리 청년(박박 밀어버린 그 머리때문에 기억한다)이 업무시간일텐데 도망나와서 몇칸 앞자리에 와 앉았다. 손에 들고 있던 가방에서 바렛의 소설들을 잔뜩 꺼내서 옆사람에게 보여주며 자랑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이건 초판이고 이건 어드밴스드 리딩 카피이고...
책날개의 흑백 사진만으로 보아선 잘 알수 없었던 바렛의 머리색은 은빛이었다. 180이 훌쩍 넘어 보이는 큰키와 어울리지 않게 바렛은 가냘픈 목소리에다 좀 수줍어 하는 것 같았다. 짧은 인사말을 마치고 신작 소설가운데 "Theories of rain"의 서두를 나긋나긋하게 읽어나갔다. 한번도 "작가와 독자와의 만남"류의 자리에 가본적이 없던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마주 앉는 기회가 얼마나 큰 기쁨인지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건 마치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에 가서 광란하는 멤버, 주위의 관중과 함께 심장의 박동수를 높일때 느끼는 희열과도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 물론 락콘서트에서와 같은 열광과 관람후 땀투성이가 된 셔츠를 갈아입는 등의 난리법석은 없지만, 내가 좋아하고, 또 자신과 자신이 쓴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어놓고 말하지 않아도 조용히 흐르는 서로에 대한 애정의 기운을 확인할수 있는 자리에서, 주위 사람들의 표정은 따뜻하기 그지 없었고 천장의 전구들도 마치 반사광인듯 부드러운 빛을 내려뿜는것 같았다.
질의 응답 시간은 저자 못지 않게 역시 수줍어하는 객석의 사람들(미국사람들이 왜 이래)로 그렇게 열띤 분위기는 아니었다. 짧은 영어에다 흥분한 가슴에 질문거리라곤 생각해내지 못했던 나도 수줍은 관객의 한명이었다. 뒤이은 저자 사인회에서야 나는 더듬더듬 반가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귀기울여 듣던 바렛은 내가 그자리에 모인 사람가운데 제일 멀리서 온 사람이람일것이라며 반갑다는 듯 웃었다.
이제 물리적으로 그 자리를 상기시켜주는 것은 책에 남은 바렛의 짧은 서명 한줄이지만 바렛이 읽어내려가는 소설 한구절한구절이 실내악처럼 그득히 채우던 서점의 공간과, 들뜬 기분을 가누지 못하여 서점을 나와 터미널로 걸어가는 시간은 마치 계획없이 훌쩍 떠났다 돌아온 여행속의 추억같이 기억속에 남는다.
다음날 같은 자리에서 있었던 퓰리처상 수상작가 에드먼드 모리스(디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평전을 썼다고 한다)의 간담회는 바렛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왔고(카메라맨까지 왔다) 저자 역시 청산유수같은 달편으로 자리는 열기가 넘쳤으나 내겐 지루했다. 아마도 여우의 말처럼 대상을 그만큼 아름답고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쏟은 시간과 품은 애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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