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유는 아마도 책이라는 매체에 품고 있는 다른 매체와 비교할 수 없는 애정 탓일 것이다. 난 서점에서 책을 들고 계속 본 적이 없다. 목차와 내용 일부를 보고 구입을 결정한 후 살책이면 바로 사고 아니면 내려놓고 더 이상 보지 않는다. 그래서 서점에 주저 앉아 죽치고 책보는 사람들 보면 짜증이 난다. 돈주고 사서 보지 않고 내용만 싹 읽고 헌책을 만들어 놓고 가는 나쁜 족속들. 그러나 이건 내 개인적인 기호이므로 그 사람들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이곳에 가득 계시는 책벌레들에 비하면 초라하겠지만 내방엔 더이상 책 꽂을데가 없다. 몇차례의 이사동안 힘들게 추려낸 책들만 있어, 더이상 헤어지고 싶은 것도 남아있지 않다. 새로 산 책들 가운데 맘에 들고 예쁜 것들에게도 내어줄 공간이 없어 바닥에 기둥을 이루며 쌓아 놓아야 한다.
책을 좋아하면서도 사서 집에 두는 것을 꺼려하는 친구가, 책이 차지하게 되는 공간과 이 좁은 땅에 사는 사정을 고려하면 책 구입이야말로 사치스런 일이라는 요지의 말을 언젠가 한적이 있었다. 돈 벌어서 넓은 집으로 이사가면 어느정도 해결이 되겠지만, 그건 돈이 더 많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 친구의 말이 맞다. 책 구입은 다른 취미에 비해 비용은 덜 들지몰라도 사치스런 행위다.
어쩔수 없이 책을 사는 일을 될수 있는대로 줄여야 한다. 다행히도 나는 요즘 들어 서점에서 보이는 책들에 대해 많은 불만을 품고 있다. 그런 구입기준의 엄격화로 종이책 구입을 줄이고 그래서 이미 집에서 비좁게 살고 있는 책들에게마저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 이것도 어떻게 보면 내 '책사랑법'의 하나라고 하고 싶다. 내가 서점에 들러 책을 집었을때 내용의 선호에 관계없이 구입을 결정하는데 보류판정의 기준으로 써먹고 있는 것들을 몇가지 적어보았다. (이 글은 그동안 이곳저곳에서 늘어놓았던 내 불평의 집대성이다).
- 작가의 얼굴 사진을 표지에 박은 책
좀 이쁘답시고 작가 사진을 커버에 박아 놓은 책은 절대로 사서 내 책꽂이에 꽂아 두지 않는다. CD 커버에 가수 사진 내놓은 것도 못마땅한 마당에 책 커버에서마저 그런 걸 내가 봐야 할 이유가 없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을까? 아름답게 디자인할 여지가 그렇게 많아 아쉬운 공간에 얼굴 하나 박아 넣고 단란주점 전단지처럼 만들어 놓다니. 사실 책에 난 음악 씨디만큼의 그런 너그러움을 베풀고 싶지 않다. 좀 있으면 작가 비키니 사진들이 대거 책 커버에 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가의 모습은 책 날개에 작게 삽입되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작가 얼굴보고(물론 궁금하긴 하지만) 책을 사야겠는가?
- 베스트셀러 제목을 흉내내어 지은 책
예를 들어 레몽 장의 책 읽어주는 여자 이후로 양손으로 꼽아도 모자랄 만큼 그걸 흉내내어 쏟아져 나온 XX 읽어주는 XX 이런 같잖은 제목의 책들은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절대로 사지 않는다. 비슷하고 그럴듯한 제목으로 어떻게 눈길을 끌어보자는 출판사들의 얄팍한 의도에 넘어가고 싶지 않다.
사실 이건 좀 과한 반응일지도 모르고 자칫하여 양서를 놓치게 되는 일도 일어난다. 나중에 알았지만, 코웃음치고 들춰보지도 않았던 베른하르트 슈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는 사실 원제에 상당히 충실한 번역제목이었고 내용도 내가 보기엔 책 읽어주는 여자보다 훨씬 나은것 같았다(결국 고민하다 이 책은 영역본으로 샀다). 하지만 그외의 책들은 정말 용서할수 없다.
- 시X사 책
시X사의 자금력의 배후를 알게 된순간, 나는 그동안 열심히 사모았던 디스커버리 총서들, 아끼던 그리폰 북스들 위에 토악질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다시 시X사의 책을 사면 내 성을 간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로 ㄹ서점에서도 절대 책을 안 사고 근처에도 안 간다. 전씨일가에 내 돈 단 한 푼이라도 들어가게 하나봐라. 그 출판사가 그동안 내놓은 양서들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80년대를 자의식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으로서 내가 양보도 용서도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 이런 X같은 출판사 아시면 알려주시기 바란다.
- 멀쩡한 단권을 두셋으로 쪼개서 내놓은 책
내가 증오하고 또 증오하는 책들이다. 예를 들어서 최근에 황금가지에서 나온 매튜 펄의 단테 클럽을 보자. 원작 하드커버는 370페이지의 날씬한 분량이다. 번역서는 이 멀쩡한 한권의 책을 두 권으로 쪼개놓았다. 합쳐서 무려 800페이지 가까이 된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담고 있는 정보의 양을 생각하면 어느 나라 언어로 옮기든 전체적인 분량은 비슷해지는 법이다. 활자를 죠리퐁 알갱이만큼 키우고 행간과 상하좌우여백을 얼마나 늘려놓았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책이 아니라 종이뭉치다. 엄청난 종이 낭비일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상하권중 한권은 틀림없이 어디로 사라져버린다. 열받게시리. 나라도 비좁은데 책 부피는 왜 늘리냐 말이다. 다니엘 페낙의 산문파는 소녀, 난 상권밖에 안가지고 있고 하권은 어디서 구할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한권으로 나왔으면 벌써 구하거나 못구하거나 결판이 났을 것이다. 상권을 쳐다 볼때마다 속에선 열불이 나는 이런 경험은 안 해도 되었을 것이다. 에코의 바우돌리노를 두권으로 나누어낸 이유가 대체 뭘까? 판형 약간만 키우면 될텐데. 여자들 핸드백에 들어가게 하려고 그랬나? 부글부글 끓는 속을 억누르고 굳이 영역본을 사서 몇배의 시간을 더 들여가며 읽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까? 제프리 유지니데스의 미들섹스, 번역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에 감격했고, 표지도 영문 원서보다 훨씬 예쁜 스페인어판을 가져오는 등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역력했는데, 왜 그게 두 권으로 나눠져 나왔나 말이다...
물론 원작이 여러권으로 나온 책들에 대해선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것인데, 그걸 일일이 따져볼수도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나는 하루끼의 태엽감는새가 사 읽고 싶었는데, 세상에, 600페이지도 안될 책이 네권으로 잘라져 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그래서 역시 무리해서 (일본어는 잘 못읽으니까) 제이 루빈의 한권짜리 잘 생긴 영역본을 사서 보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일본어판도 한권이 아니라고 한다. 어쩌면 소설책을 토막치는 희한한 전통은 일본에서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쪽발이 놈들.
요즘은 다소 상황이 호전되는 기미도 보인다. 토막친 책들이 잘 팔리면 느지막히 소장본이라고 하면서 단권 양장본이 출간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소장본이 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 활자가 큰책
이건 위의 항목과도 통하는 내용이지만, 전자출판이 지배적으로 된 이후로 생긴 가장 큰 폐단이다. 전 국민이 시력장애자인줄 아는가? 왜 소설책들이 한결같이 시력장애자나 노인형 라지프린트본 모양을 하고 나오는가? 나도 방위받을뻔한 원근시안이지만 내가 왜 이런 아동용 동화책만한 글씨를 하고 있는 책들을 보며 바쁘게 페이지를 넘겨야하는지 모르겠다. 책을 불려서 여러권으로 쪼개가지고 책값을 올리려는 출판사들의 뻔한 속셈이다. 쪼개지 않아도 300페이지도 안되는 책이 번역된 후 5-600페이지로 불어나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이 약간 섞인 분노가 치민다.
전에 어떤분이 출판 디자인 분야에 여성 인력이 많이 진출하면서 전체적인 레이아웃이 여성 독자들이나 디자이너들의 취향에 맞추어지면서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는 말씀을 하신적이 있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고 어쨌든 전반적인 소설책들의 꼴이 내 맘에 안 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여기 써놓고 보니 참 책 안 살 핑계 많다.
그러나 그냥 핑계라고 할 수만은 없다. 책은 예술품이다. 윌리엄 모리스가 다른 예술품 못지않게 신경을 쓴 것이 제본양장이라는 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담은 내용만큼이나 매체/용기의 모습도 중요한 것이다. 음악은 LP 커버가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CD가 나온 이후 매체의 모양에 대해 신경쓸것이 없어져 버렸다. 영화는 애시당초 매체라고 할것이 없었으니 그게 DVD건 VCR 카세트이건 상관을 안 한다. 그러나 책은 그렇지 않다. 나는 아직도 단순하지만 산뜻한 디자인과 올록볼록한 활판의 자국이 느껴지는, 빽빽하게 가지런하게 찍힌 글자들이 가득한 동서문화사 World Great Books와 학원사 세계문학전집을 보면 너무 아름다워서 기분이 좋아진다. 책이 계속 어떻든간에 내가 바라는 모양을 하고 있기를 바라는 것이 부당한 요구는 아닐 것이다.
사실 내가 불만스럽게 여기는 책들 대부분은 소설류다. 다른 교양 과학서적이나 인문사회계열 서적들은 꿋꿋이 한권으로 글자도 그렇게 크지 않으면서 저자 얼굴이 커버에 박히는 일 전혀 없이 만족스런 모습을 하고 나온다. 어쩌면 소설들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나와 같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지 않거나 지금의 책모양에 오히려 만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번지수를 잘못 찾아가서 왜 이집에 엉뚱한 사람이 사냐고 따지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책을 정보를 얻는 매체가 아닌 예술의 한장르로서의 문학, 특히 소설을 접하는 매체로 여기는 내게는 무척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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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년부터인가 전자책을 하나둘씩 사기 시작했다. 공간의 제약이라는 상황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택하게 된 방법이다. 전혀 부피를 차지하지 않을 뿐아니라 가격도 매우 저렴하다. 물론 손과 품에 안기는 책의 양감을 맛볼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다 좋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점점 많은 책들을 PDF로 읽는다. 그리고 아마존, 북토피아 등에서도 가능하면 전자책을 산다. 구입즉시 읽을 수 있고, 배달시의 사고가 없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값도 저렴하고 티가 전혀 나지 않으므로 책이 늘어나는 바람에 그만 산다고 해놓고 왜 책을 계속 사냐는 잔소리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올해초에 Jornada 720 기종 PDA를 하나 구입했다. Handheld PC 라고 분류되는 이 PDA는 화면이 일반 PDA보다 커서(640x240) 전자책을 읽기에 제법 편하다(키보드도 달려 있어서 이 글도 지금 푸드코트 한구석에서 PDA로 쓰고 있다). 여러가지 책을 동시에 읽는 내 버릇때문도 있겠지만 이제 출퇴근하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무겁게 여러책을 휴대하지 않아도 이 책 저책을 번갈아가며 읽을수 있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최근 베스트셀러나 대하소설등 웬만한 것은 다 해킹된 전자책을 다운로드해서 공짜로 볼수 있다. 많이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베스트셀러들 - 다빈치코드 같은거-은 이제 작가도 출판사도 서점도 돈 벌만큼 벌었을테니 굳이 사서 안 봐도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불법 다운로드한 것을 MP3 듣듯이 본다.
이따금, 전자책들이 내게도 몸을 달라고 애처롭게 말을 걸어 온다. 다른 책들처럼 물리적인 몸을 얻어 책장에 꽂히지 못하고 전원이 들어온 랩탑과 PDA 안에서만 살아 있다 어느 순간 사라질지 모르는 무형의 존재들이, 내게도 몸을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듯한 드르륵 거리는 소리를 낸다. 디지탈 시대의 아픔이다. 수천년동안 사람들을 사로잡아온 아름다운 책의 모습을 결코 가져보지 못하는건 전자책의 비애다. 책의 아름다운 모양을 좋아하면서도 전자책을 사야할 필요를 느끼는 변화의 시기를 살면서 치러야 하는 갈등이려니 하고, 전자책들에게 그냥 너희들이 참아라하고 서툰 위로를 건넨다. (2004.9.28)
2 comments:
안녕하세요. '책' 태그 검색했다가 들렀습니다. 저도 활자 키우고 장평 늘려서 억지로 쪼갠 책 정말 싫어해요. 단권 양장본도 글자간 드문드문하게 만들어 놓고는 가격을 높여서 스스로 가치 못하는 책 만들어 놓는 출판사의 행태도 밉습니다. 저는 보관 문제로 학교 도서관을 주로 이용하는데, 전자책은 아무리 보려고 해도 적응이 잘 안 되더라고요. 저는 2009년을 살면서도 이런데 2004년부터 전자책을 읽어오셨다니!
비슷한 취향을 지니신 분이 계시다니 반갑습니다. 저도 요즘은 마음을 바꿔서 집에서 가까운 서초/강남 도서관을 열심히 드나들면서 읽고 필요하면 복사해서 보관하곤 합니다. 덕분에 책 살 일이 좀 줄어 들어서 좋긴 하지만, 꼭 마음에 드는 책들이 - 예를 들면 최근에 나온 캐롤 오츠나 애트우드 등 - 토막나서 출판된 것들을 보면 늘 마음이 아픕니다.
첫번째 덧말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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